‘무안에서 세계로!’
1. 멀고도 가까운 나라 비엣남 냐짱을 가다
비엣남 냐짱 둘째 날(2024. 9. 28.)
이튿날 아침 일찍 일어나 호텔 앞 해변으로 산책하러 간다. 나무 치장이 특이하다. 머리 부분을 사각으로 깎아 놓았다. 보통은 둥근 게 상식인데. 나름 관광지의 매력으로 다가온다. 해변은 모래알이 참 부드럽다. 파도는 낮고, 물은 미지근하다. 그래서 아침 일찍 해수욕을 즐기는 이들이 많다.
호텔식으로 배를 든든히 채우고, 1층 스타벅스에서 아이스아메리카노 한 잔의 여유를 느낀 후 유적지 탐방에 나선다.
첫 유적지는 뽀 나가 참탑(Thap Cham Po Nagar). 영어 발음으로 포나가르 참탑. 그래서 우리에겐 포나가르 사원이란 명칭이 더 친숙하다.
나트랑 외곽 10m 높이의 꾸라오 언덕에 있는 힌두교 사원이다. 817년 당시 직조술과 새로운 농업기술을 가르쳐준 양 뽀 나가(an Po Naga) 공주를 모시는 사원이다. 베트남 중남부를 지배하던 참파 왕국이 8세기부터 목조건물로 지었지만 자바군과의 2차례 전쟁으로 소실된다. 이후 붉은 벽돌로 재건축하면서 500여 년에 걸쳐 건설한 유적이다. 참파 유적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 중 하나. 화재가 자주 일어나 대부분 소실되고 남은 유적은 몇 개 되지 않아 10분 정도면 둘러보기에 충분하다. 아니, 날씨가 너무 더우니 10분 만에 다 돌고 나오는 것이지, 인생샷 장소에서 줄지어 대기하다 사진을 찍고, 공연을 끝까지 즐기고, 박물관도 관람하는 등 제대로 관광할라치면 훨씬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뽀 나가 참탑은 베트남 중남부에서 번성했던 고대 문명 중 하나인 참파 왕국과 인도 문화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흔적이 있는 인문학 유적이다. 월족의 북부 베트남과 달리 이곳 중남부는 과거 인도차이나 즉, 캄보디아와 같은 문화권에 속해 인도의 영향을 많이 받은 참족의 도시였기 때문이다.
192년 건국된 말레이계 참족의 참파 왕국은 베트남 중부를 중심으로 성장한다. 중국 남부와 인도를 잇는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해상무역 국가다. 종교적으로는 인도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아 힌두교와 불교가 융성해 문화적 토대를 이룬다. 9~10세기 크메르제국, 베트남, 중국과 경쟁 속에 크메르쪽으로 영토를 확장해간다. 11~13세기엔 베트남 리 왕조의 침략을 받아 많은 영토를 빼앗긴다. 남월족인 북부 베트남의 남부 진출이 시작된 것이다. 13~14세기 베트남 쩐 왕조 시기에도 북부 베트남의 남부 진출은 계속된다. 하지만 몽골 제국의 침략을 막아냈던 쩐 흥 다오가 잘 막아낸다. 한때 북부 베트남 수도 하노이를 점령하며 오히려 북부 베트남을 위협하기도 한다. 하지만 15세기 북부 베트남 레 왕조의 대규모 군사 원정에 무릎을 꿇고 만다. 이후 참족은 북부 베트남에 동화돼 소수민족으로 살거나, 마지막 왕 포 치엥을 따라 캄보디아로 이주하게 된다. 결국 남중국계로 한자 문화권이던 남월족의 북부 베트남이 말레이계로 인도 문화의 영향을 받은 참족의 참파 왕국을 물리치며 베트남의 국토가 남북으로 길게 뻗게 된 것이다.
한때 참파 왕국의 왕도였던 이곳 나트랑. 당시 지명은 꼬타라. 꼬타라의 여신인 뽀 나가를 모시는 곳이 바로 눈 앞에 펼쳐진 뽀 나가 참탑이다. 뽀 나가는 힌두교 여신인 두르가를 표현한 것으로 해석된다. 두르가는 힌두교의 최고신인 시바의 부인이니, 뽀 나가는 참족에게 시바의 부인으로 추앙받는 셈이다. 참족어 ‘뽀 나가’가 ‘나라의 어머님’이란 뜻을 담고 있는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구름과 바다 거품에서 날아오른 창조의 여신으로 풍작과 평화로운 삶을 가져다주는 여신이다. 팔이 10개나 된다.
참파 왕국의 민족이 바로 참족. 현재 베트남 중남부와 캄보디아에 흩어져 거주하는 소수민족이다. 독자적인 언어, 문화, 종교를 가지고 있다. 베트남에서 참족 인구는 약 10만 명 정도다.
3만 동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간다. 엄청 비싼 입장료를 지불한 것 같지만, 우리 돈으로 ‘0’ 하나를 빼고, 그 절반으로 계산하니 애걔~, 1천500원밖에 안되네.
관광지라 시끌벅적하지만 그래도 사원인지라 입구에서부터 옷깃을 여미고, 경건하게 마음을 다잡아본다. 실제로 그랬었나 싶은데, 그랬을 거라 치자. 지하철 입장권 홈 같은 입구에서 표를 내고 언덕으로 오르면 하늘을 향해 14개의 기둥이 양옆으로 대칭을 이뤄 솟아있다. 만다파라 불린다. 사원의 현관쯤으로 생각하면 될 듯하다.
뽀 나가 여신에게 제사를 올리기 전에 잠시 마음을 깨끗이 정화하고 제사 의식을 준비하는 곳이다. 위에 있는 사원을 중간에 두고 양옆에 대칭해 기둥이 우뚝 서 있다.
더 많은 기둥이 있었다고 전하나, 현재는 14개와 돌계단만 남아있다. 기둥 위에는 기와지붕이 있었다는데 이도 찾아볼 수 없다. 돌계단은 너무 가팔라서 오르지 못하고, 옆길로 올라간다.
언덕에 올라 시내로 시야를 돌리면 수평선이 보이는 나트랑 해변, 그 바다로 유유히 흘러 들어가는 카이강 풍경이 멋지다. 카이강 다리 사이에 둥둥 떠 있는 듯 솟아있는 암석 섬 풍경도 아름답다.
곧바로 뽀 나가 여신을 모신 중심 사원이 나오고 주변에 작은 참탑들이 있다. 원래는 8개의 참탑으로 건설됐는데 현재 남은 것은 4개. 남은 4개의 참탑도 7세기에서 12세기까지 오랜 기간에 걸쳐 건축된 것이어서 서로 다른 건축 양식을 띠고 있다. 1천300년이란 세월의 무게를 지닌 붉은빛의 흙벽돌 탑과 사원이 나트랑의 역사를 잘 보여주는 것 같아 숙연해진다. 많은 노동력이 투입됐겠지만, 만리장성이나 피라미드처럼 웅장하진 않아서 다행히도 그리 큰 희생이 따르진 않았을 것으로 추측돼 인간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불에 구운 석회암으로 지어져 마치 붉은 사암으로 건축된 인도의 힌두사원처럼 오묘하고 절제된 아름다움도 묻어난다. 유럽의 부유하고 거대한, 마치 속세의 때가 과하다 싶은 정도로 묻어나는 성당과는 대조적이다.
중앙에 흙벽돌을 이어 붙여 세운 참탑이 웅장하다. 팁 찐이다. 팁 찐의 중심 탑은 23m에 이른다. 뽀 나가를 위해 건설한 것이다. 특별한 방식으로 구운 붉은 벽돌을 접착제 없이 쌓아 올린 것이다. 접착제 없이도 비가 새지 않게 튼튼하게 지은 참파 왕국의 엄청난 기술력에 입이 벌어진다. 위로 올라갈수록 가늘어지는 피라미드형 지붕이다. 위쪽에 두르가 여신 부조상이 있다. 2명의 음악가와 함께 춤을 추듯 물소 위에 서 있다. 네 손에는 손도끼, 연꽃, 몽둥이를 들고 있다. 두르가 여신은 인도에서 힘과 전쟁, 보호를 관장하는 신으로 시바의 아내다. 산스크리트어 ‘두르가’는 ‘어려움이 있다’는 ‘두르’와 ‘가다’ 또는 ‘오다’를 의미하는 ‘가’가 합성된 것이다. ‘무적’이나 ‘난공불락’의 요새였을 것이라는 추측을 가능케 한다.
지붕은 코끼리, 거위 등 화려한 조각상으로 장식돼 있다. 이들은 모두 뽀 나가가 있는 방향을 향해 기도하는 모습이다. 사원은 신발을 벗고 들어간다. 경건한 종교적 장소이니만큼 팔과 다리를 가려야 한다. 민소매, 반바지, 모자, 슬리퍼 등 복장은 금지된다. 제아무리 종교시설이라지만 놀러 왔는데 복장까지 신경 써야 하나 싶다. 하지만 관광지 아닌가? 관광객을 위한 배려가 있다. 참탑 오른쪽에서 무료로 가운을 대여해줘 손쉽게 걸치고 들어갈 수 있다. 좁은 입구를 따라 내부로 들어가면 두 다리를 교차한 자세로 앉아 있고 10개의 손으로 다양한 상징적 물건을 들고 있는 뽀 나가에게 기도를 할 수 있다. 내부에선 사진 촬영이 금지된다니, 밖에서만 엿보고 오른쪽 부사당이 있는 곳으로 발길을 돌린다. 고3 수험생 자녀가 있는 한 일행이 기도를 하겠다고 들어가는 걸 보고 ‘신자도 아니면서’라는 생각과 함께 역시 ‘어머니는 위대하다’라는 생각이 겹친다.
오른쪽 옆으로 돌아가면 빙 둘러 3개의 참탑이 더 있다. 중앙탑과 남쪽탑, 동쪽탑, 북쪽탑으로 이뤄진 구조다. 남쪽탑은 비슈누를 모신다. 비슈누는 우주를 유지하는 신이다. 동쪽탑은 간다르바를 모신다. 음악의 신이다. 천상 음악가로 여겨지며 신성한 결혼식의 수호자 역할도 하는 신이다. 북쪽탑은 시바신. 파괴와 전쟁을 상징하는 힌두교 최고 인기신이다. 중앙탑보다는 작고 구조도 단순해 보이지만 참파 건축 양식이 잘 드러나 있다. 탑 내부와 지붕에는 남성의 성기 모양을 한 인도 시바신의 상징물 ‘링가’가 설치돼 있다. 다산을 상징하는 것이어서 아들을 낳고 싶은 사람들이 참배를 위해 찾는 곳이다. 저물녘에 오면 카이강으로 물드는 붉은 노을과 붉은 흙벽돌이 어우러져 더욱 아름다운 풍광을 연출한다는데, 한낮 뙤약볕에 방문한 게 아쉬울 따름이다.
뽀 나가 찹탑 뒤쪽에선 참족의 전통 민속춤 공연이 펼쳐진다. 시간대별로 공연이 이뤄진다는데, 내가 행운을 몰고 다닌 탓인지, 도착하자마자 공연이 시작돼 영상으로 담아본다. 항아리를 머리에 얹고 시작해 손으로 옮기며 전통 장단에 맞춰 춤사위를 선보인다. 리듬이 경쾌해 자꾸 듣고 싶어진다.
사원 제일 안쪽에는 작은 박물관이 있다. 그 옆으로는 정원이 꾸며져 있다. 인생샷을 찍으려는 여성들이 커다란 바위에 올라가 참탑이 나오는 방향으로 온갖 자세를 취하며 사진을 찍고 있다. 예술적인 탑과 사원의 붉은 흙벽돌이 정원의 초록 식물과 어울려 예쁜 사진이 나오기 때문이다. 차례를 기다리려니, 좀처럼 비켜 주질 않는다. 거기다 쨍쨍 내리쬐는 햇볕과 높은 습도 때문에 땀줄기가 등을 타고 흘러내려 더 기다릴 엄두가 나질 않는다. 일행들도 모두 더워선지 이미 밖으로 내려가고 있어 휭 둘러보고 뒤따라 내려갈 수밖에...
불과 10분여 한 바퀴 뺑 돌고 나오니 땀으로 샤워를 한 것 같다. 호텔에서 아침 버스 시간에 늦게 나왔던 일행이 울며 겨자 먹기로, 아니지 아주 기분 좋게 시원한 사탕수수 주스 턱을 내 잠시 더위를 식혀본다.
버스를 타고 카이강의 쩐푸 다리를 건너 시내로 향하면서 뒤돌아보니, 카이강 너머 언덕 위 뽀 나가 사원이 잘 가라고 손짓한다. 산과 강과 바다가 조화를 이루고, 붉은빛 힌두사원이 있는 매력적인 관광지에 이별을 고한다.
힌두사원을 들렀으니, 참족의 또 다른 신앙 대상인 불교사원도 가 봐야지. 그래서 향한 곳은 롱선사. 뽀 나가 참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천상천하 유아위존 요도중생 생로병사(天上天下 唯我爲尊 要度衆生 生老病死)’, “하늘 위, 하늘 아래 오직 나만이 존귀하다. 나는 중생들을 생로병사에서 건질 것이다.”
기원전 624년 음력 4월 보름, 아이가 태어나기 참 좋은 따뜻한 봄날. 인도(현재의 네팔) 히말라야 남쪽 기슭 룸비니 동산 모우수 나무 아래서 고타마 싯다르타가 탄생한다. 석가족인 카필라성의 성주 정반왕과 콜리야족 선각왕의 딸 마야 사이에 태어난 왕자다. 태어나자마자 일곱 걸음을 걸은 후 사방을 둘러보며 “오직 나만이 존귀하다~”는 말을 했단다. 태몽은 흰 코끼리가 마야의 옆구리로 들어오는 꿈이다. 정반왕은 아들의 이름을 싯다르타라 짓는다. ‘목적을 달성한다’는 뜻이다.
호화로운 궁중 생활 속에서도 태어나 병들고 늙고 죽는 것에 괴로워하며, 삶이 무자비한 괴로움의 순환이란 생각을 한다. 궁중이 감옥이라 생각하고, 어느 날 깊은 밤 몰래 성을 빠져나온다. 그때 나이 29세. 동남쪽으로 향하다 마가다국에서 수행단체를 이끌던 알라라 칼라마, 웃다카 라마푸타에게 차례로 가르침을 받는다. 다시 서남쪽으로 가 네란자라강이 흐르는 우루벨라 마을의 조용한 숲속에서 홀로 혹독한 고행에 들어간다. 손으로 배를 누르면 등뼈가 닿을 만큼 먹지 않고 수행한다. 가시 위에 눕기도 하고, 공중에 몸을 거꾸로 매달기도 하면서, 6년이란 세월이 흐르지만 도를 구하지 못한다. 싯다르타는 자리에서 일어나 네란자라강에 몸을 씻고 음식을 먹기 시작한다. 건강을 회복한 후 보리수 아래 풀을 깔고 명상에 잠긴다. 7일째 적막한 새벽녘에 별이 반짝인다. 모든 이치를 환하게 보는 깨달음을 얻은 순간이다. 싯다르타는 그렇게 35세에 ‘깨달음을 얻은 자’, 붓다로 재탄생한다.
롱선사는 1886년 프랑스 식민지 시절 반 프랑스 운동을 주도하던 승려 팃 응오찌가 세운 불교사원이다. 나트랑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로, 남쪽에 위치해 지역의 수호신이 머무는 곳으로 여겨진다. 원래 높은 언덕에 자리했으나 태풍으로 사원이 훼손되고 1936년 지금의 자리에 재건된다.
우리네 사찰과 달리 입장료는 무료다.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법당의 고요함과 웅장함이 엿보인다. 그 뒤에 위로 올려다보이는 좌불상은 편안함과 안정감을 준다. 비자 향이 은은하다. 우리나라 선종의 요람인 장흥 보림사처럼. 보림사는 인도와 중국의 가지산에 있는 보림사와 함께 동양 산보림으로 꼽히는 곳이자, 우리나라에 선종이 들어와 정착된 곳이다. 보림사 뒤편에 300년 이상 수령의 비자나무 500여 그루가 빽빽이 들어서 장관을 이룬다.
경건해야 할 사찰이지만, 법당 오른쪽 입구엔 오토바이 호객꾼이 많다. 5만 동, 우리 돈으로 2천500원을 내면 오토바이로 좌불상까지 편하게 갈 수 있단다. 비록 덥고 힘들지만 아직 내 무릎이 성하니, 두 다리를 믿고 올라가 보기로 한다.
법당을 오른쪽으로 끼고 152계단을 오르다 보면 중간쯤에 17m 길이 고타마 부처의 거대한 불상이 누워있다. 와불상.
와불 뒤에는 부처님이 돌아가신 날에 모인 제자 49명의 부조가 새겨져 있다. 와불의 왕발가락과 팔꿈치를 문지르면 소원이 이뤄진단다. 이 때문인지 두 부위에 유난히 까맣게 손때가 묻어있다. 소원이 이뤄진다는데 그냥 지나칠 수야... 손으로 만져보고 소원을 빌어보고 같이 눕는 자세를 취하며 사진에 담아본다.
와불상을 지나 다시 계단을 따라 올라가는 길에 팔각정이 있고 그 안에 대종이 있다. 좌불이 있는 언덕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더운 날씨에 땀은 좀 흐르지만 두 다리로 올라가 볼 만한 거리다.
거대한 연꽃 위에 앉은 24m 높이의 새하얀 좌불이 온화한 미소로 기다리고 있다. 부패한 정부의 불교 탄압 정책에 맞서 분신한 팃 광득 스님을 포함해 존경받는 승려 7인을 기리는 뜻에서 지어진 것으로 전한다. 좌불상 뒤쪽으로 돌아가면 기도를 드릴 내부 법당도 있다는데, 무더위 탓에 가볼 엄두를 내지 못한 것이 아쉽다. 좌불은 탁 트인 나트랑 시내를 내려다보고 있어 함께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시원하고 좋은 기운을 받아 갈 뿐이다.
힌두사원과 불교사원만 들르면 하느님이 노하실 것 같다. 가까운데 성당이 있다니, 마저 들러야 큰 벌을 면하지. 나트랑 대성당으로 향한다.
도심 한 가운데 12m 높이의 다소 낮은 언덕 위에 돌로 지어진 성당이다. 벽돌이 아닌 돌을 네모나게 깎아 쌓아 올려 돌성당이란 별명이 있다. 흔히 유럽에선 웅장한 크기에 압도되지만 이곳 나트랑 대성당은 그에 비하면 아담한 수준이다. 그렇다고 결코 적은 규모는 아니다. 나트랑 교구의 성모교회로서 이 도시에서 가장 크다. 1886년 프랑스 선교사들이 처음 지었지만 현재의 모습은 1928년 재건된 것이다. 고대 로마의 웅장하고 매력적인 성채의 모습을 한 네오고딕 건축물이다. 건물이 하도 예뻐 도시의 랜드마크이자 젊은이들의 웨딩촬영 장소로 유명하다.
뽀 나가 참탑과는 또 다른 이국적인 느낌이다. 종교가 다르고 시대가 다르니, 그럴 수밖에. 특히나 프랑스에서 직접 공수한 38m 높이의 종탑이 있어 더더욱 그렇다. 종탑 4면에 큰 시계가 걸려 있다. 주변 주민들이 시간을 알고 싶으면 자연스레 대성당으로 눈길을 돌린단다.
입장료는 없는데 입구에서 기부금을 내라고 손짓하는 현지인이 서 있다. 1만 동, 우리 돈으로 500원이다. 기부 없이 그냥 지나쳐도 된다. 성당 왼쪽으로 올라가는 언덕길이 예쁘다. 우측 외벽으로 성당을 지은 루이발레 신부를 포함한 신자 4천여 명의 묘비가 새겨져 있어 숙연해진다. 왼편에는 대천사와 12사도 등 성경의 주요 인물상이 파노라마처럼 줄지어 있어 더욱 엄숙해진다.
본디오 빌라도 유대지방 총독의 명에 따라 십자가를 지고 고난길로 향하는 성경 속 이야기를 형상화해 가슴이 아려온다.
본당은 600명이 넘는 인원이 예배할 수 있는 웅장한 규모다. 아치형 천장과 함께 잔 다르크를 비롯한 프랑스 가톨릭 성인과 예수의 일생을 묘사한 스테인드글라스 장식이 화려하다. 문 뒤쪽으로는 두 줄의 좌석이 일직선으로 배치돼 있고, 중앙에는 예수님께 직접 연결되는 본당이 있다.
본당을 나와 출구 쪽으로 향하면 초기 성당을 건축하고 선교에 앞장서며, 교구민을 위해 평생을 바친 프랑스 신부 루이 발레가 묻혀 있다.
입구이자 출구로 다시 내려오면 마리아 석상이 서 있고, 그 뒤로 기다란 성화가 부조로 새겨져 있다. 다시 그 뒤로 대성당이 늘어서 있다. 인생샷을 찍기 좋은 장소라는데 후텁지근한 날씨 때문에 그냥 눈으로만 찍고 지나칠 뿐이다.
무려 3개의 종교 유적을 돌아다녔는데 아직 점심 먹을 시간이 아니다. 모두가 호사스럽지 않게 절제되고 경건한 종교시설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유럽에서 대성당을 휘 둘러보면 한나절은 쉽게 지나가는데. 종교시설은 무릇 이처럼 절제미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세 신이나 섬겼으니, 충분히 구원받을 것이라 과신하며 시원한 카페를 찾는다.
시원한 망고스무디로 몸을 식히고, 베트남에서 꼭 먹어봐야 한다는 딤섬으로 배를 채운다. 한낮 더위를 피해 호텔 수영장에서 오션뷰를 바라보며 수영도 즐긴다. 수평선이 보이는 너른 바다와, 대나무섬의 빈펄리조트가 바라다보인다. 시원하게 발 마사지를 받고 저녁은 시푸드 맛집에서 랍스터로. 모닝글로리볶음에 새우튀김, 랍스터 치즈구이 등 비쥬얼 만큼이나 맛도 있다. 술안주로 하기엔 양이 부족하다는 게 흠이다. 한국인 사장이 하는 곳이라 비싸고 양이 적은 것 아니냐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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