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샛강의 해외여행

샛강의 이탈리아 여행, 폼페이, 소렌토, 나폴리

반응형
SMALL

2018. 12. 17.

 

영국 런던과 이탈리아 여행기4

유럽여행 넷째 날!

 

영국에선 런던만 둘러봤지만, 이탈리아에선 남부와 중부, 북부 도시들을 차례로 둘러볼 예정이다.

 

이탈리아는 지중해를 향해 뻗어 있는 장화 모양의 반도와 시칠리아 섬, 사르데냐 섬, 그밖에 수많은 작은 섬으로 이뤄졌다. 북쪽으로 프랑스, 스위스, 오스트리아, 슬로베니아 등과 맞닿아 있다. 동쪽으로 아드리아 해를 사이에 두고 발칸 반도와, 남쪽으로 지중해를 사이에 두고 북아프리카와 마주보고 있다. 알프스 산맥이 이탈리아의 북부 국경을 따라 동서 방향으로 뻗어 있다.

 

구석기시대부터 사람들이 거주해왔다. 기원전 9세기 에트루리아 문명이 꽃피웠으나, 로마인들은 기원전 3~4세기 그들을 몰아내고 로마 공화정을 세운다. 4~5세기 이민족이 침략해 서로마 제국이 붕괴된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피렌체를 중심으로 유럽 예술 발전의 전진기지 역할을 한다. 15~18세기 프랑스, 신성로마제국, 스페인,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는다. 1815년 나폴레옹의 점령이 끝나갈 무렵, 여러 군소 독립국가로 분열된다.

리소르지멘토(Risorgimento 이탈리아 통합운동)’를 통해 1861년까지 시칠리아와 사르데냐를 통합하고, 1870년 이탈리아 반도의 통일을 완성한다. 1차 세계대전 기간 연합국으로 참전하지만, 1920년대 사회적 불안으로 베니토 무솔리니의 파시즘 정권이 출현한다. 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 독일의 동맹국이 돼 1943년 연합군에 패배한다. 1946년 공화국이 선포된다. 그 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유럽 공동체(EU) 창립 회원국이 된다.

인사말 본조르노(아침인사), 그라쩨(고맙다), 보나세라(저녁인사) 등을 알아두면 여행하면서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다.

 

아침 일찍 로마에서 남쪽으로 내려간다. 차창 밖은 멋진 도시에서 서민풍 시골로 바뀐다. 초록이 깔린 초원에는 양떼가 뛰어다닌다. 중간 휴게소에서 선물용 초콜릿 등을 사고, 에스프레소도 한 잔 하며 기지개를 켠다. 화장실은 필수다. 대부분의 공공화장실에서 사용료로 1~2유로를 받기 때문이다. 다만 카페에서 에스프레소 한 잔을 마시면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다. 근데 더 황당한 것은 그 화장실도 변기와 뚜껑 사이 거치대가 없는 곳이 많다는 것. 심지어 뚜껑마저 없는 곳도 있다. 그러니 깨끗한 휴게소에서 볼 일을 보지 않으면 낭패를 볼 수 있다 관광버스에 화장실이 있긴 하지만 향기 때문에 실제로 사용하진 않는다.

 

3시간 30분만에 도착한 곳은 남부도시 나폴리. 로마와 밀라노에 이어 이탈리아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다. 지중해변에 위치해 베수비오 화산과 나폴리만의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한다. 호주 시드니,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와 함께 세계 3대 미항으로 손꼽힌다. 지중해에서 상업이 가장 발달한 곳이어서, 선원들이 아름다운 항구로 꼽았다.

나폴리에는 우리와 친근한 민요들이 많다. 베수비오 화산으로 올라가는 케이블카 푸니쿨라를 홍보하는 푸니쿨리 푸니쿨라’, 어부들이 무사귀환을 기원하는 산타루치아’, 아름다운 항구에서의 사랑을 담은 마레키아레’, 태양을 그리는 오솔레미오’, 우체국을 지어달라는 돌아오라 소렌토로 등등. 플라시도 도밍고, 호세 카레라스와 함께 3대 테너 반열에 오른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내 노래의 모든 것은 나폴리에 있다고 말할 정도다.

 

제일 먼저 다다른 곳은 폼페이. 멀리 베수비오 화산이 수줍은 듯 산 허리에 구름을 걸쳐 속살을 가리고 있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 정적감을 준다. 오늘날의 폼페이 유적지를 있게 만든 베수비오 화산. 45도 각도의 가파른 산이다. 당시 폼페이인들은 베수비오 화산 때문에 고통스런 죽음을 맞이하지만, 현재의 폼페이인들은 베수비오 화산 때문에 크나큰 관광수익을 올리고 있다. 역사의 역설이다.

폼페이는 기원전 8세기 오스키족이 정착한 이후 수세기에 걸쳐 발전한 도시다. 고대 로마제국 귀족들의 휴양지로, 국제 무역도시로 번성한다. 79년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하기 전까지. 화산 폭발로 불과 18시간만에 도시 전체가 7미터 이상의 화산재에 묻혀 버린다. 1 5천여 명 이상이 숨진다. 전설로만 여겨지던 폼페이가 사라진 역사의 한 부분으로 화려하게 등장한 때는 바야흐로 1549. 수로 건설을 위해 땅을 파면서부터다. 이후 본격적인 발굴 작업은 1748년에서야 이뤄진다. 현재까지도 작업 중이다. 당장 어제의 일처럼 선명하게, 원형 그대로의 모습을 되찾고 있다. 1997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다.

 

폼페이 유적지는 현지 주민 가이드와 함께 다녀야 한다. 말이 통하지 않아 실제 가이드 역할을 하진 않는다. 단지 현지 주민에게 일자리를 주기 위한 것이다. 우리도 배울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입구에 들어서자 검투경기장과 검투사 양성소가 있다. 고대 로마의 최고 인기 스포츠였던 검투경기를 폼페이 시민들도 즐겼음을 알 수 있다. 수많은 검투사들이 이곳에서 칼에 맞아 쓰러졌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숙연해진다. 이를 아는 지 모르는 지 잔디가 푸릇푸릇 자라 어서 오라며 싱그럽게 맞이한다.

 

이어 야외 반원형극장인 오데온이 웅장한 모습으로 반긴다. 육성으로도 울림을 들을 수 있도록 객석을 급경사로 설계했다니 놀라운 기술이다. 이곳에서는 5천 명이 넘는 관람객이 모두 들을 수 있도록 벨칸토 창법으로 노래를 한다. 벨칸토는 아름다운 노래라는 뜻이다. 강약의 폭이 좁아 가수가 대단히 큰 음량을 내지 않고도 명료하게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는 창법이다. 관람석 위쪽에 앉아서 저 멀리 무대서 부르는 가수의 노래 소리가 과연 들릴까?’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나폴리 민요 ‘O Sole Mio(오 나의 태양)’가 귓가에 울려퍼진다. 성악을 전공한 가이드의 열창이다. 마치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라는 듯. 박수와 환호로 의심한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보여준다. 열창하는 가이드 옆에선 현지 가이드가 우산을 들고 멋쩍게 서 있다.

 

오데온을 지나 폼페이에서 가장 번화했던 아본단자 대로에 들어선다. 폼페이의 수준 높은 도로 기술을 볼 수 있다. 도로는 대리석이 모자이크 모양으로 짜 맞춰져 있다. 인도와 차도도 구분돼 있다. 길 중간에는 돌기둥을 세워 마차를 통제함으로써 시민들이 안전하게 다니도록 했다. 지금의 횡단보도다. 도로 곳곳에 말을 묶어두기 위한 홈도 있다.

 

폼페이 찜질방 자연채광 폼페이 목욕 이중벽

목욕탕도 있다. 찜질방과 냉탕, 온탕, 사우나 등 현대의 목욕탕 구조와 별반 차이가 없다. 탈의실에는 옷과 귀중품을 보관하는 사각형의 패인 공간이 있다. 찜질방 천장은 돔 형식이고 일정 간격으로 골이 파여 있다. 천장에 맺힌 수증기가 밑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둥글고 네모난 구멍을 비스듬히 하고, 안쪽을 더 넓게 뚫어 자연채광이 효율적으로 이뤄지도록 했다. 특히 사우나는 내부 열기가 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이중벽으로 돼 있다. 오늘날 이중창은 여기서 모방했으리라. 폼페이인들의 지혜로운 삶이 눈에 선하다.

 

목욕탕을 지나니 체력단련장이 나오고 곧이어 홍등가 루판날레도 있다. 홍등가의 건물은 처마가 길게 뻗어있어 여성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도록 돼 있다. 방마다 안쪽 벽에는 홍등가임을 암시하는 프레스코화가 그려져 있다. 홍등가는 여자만이 접대하는 곳은 아니다. 귀족 여인네들을 위한 곳도 있다. 이곳에선 검투사들이 손님을 받는다. 몸값은 여성과 비슷했단다. 홍등가에서 좀 떨어진 곳의 길 바닥에 남성의 성기 모양이 그려져 있다. 홍등가 방향을 알리는 이정표다. 물을 운반하기 위해 납으로 만든 납관도 눈에 들어온다.

루판날레 프레스코화 1 루판날레 프레스코화 2

 

제우스신전 켄타우로스상 제우스신전서 보이는 베수비오 화산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포럼(공회장)’이 위치해 있다. 관공소가 있었던 곳이다. 제우스 신전도 있다. 헬레니즘 영향을 받아 정면에 코린트식으로 세워진 48개의 기둥만이 남아있다. 켄타우로스 상이 있다. 원래 존재했던 3개의 신상인 제우스, 헤라, 미네르바는 다른 박물관에 전시돼 있단다. 신전 뒤로는 베수비오 화산이 보인다. 쉽사리 속살을 보여줄 수 없다는 듯 여전히 구름옷을 걸치고 있다.

 

폼페이 화석 임신한 여인 폼페이 화석 기도하는 사람
폼페이 화석 아이 폼페이 화석 개

포럼을 지나면 옛 곡물창고 터에 폼페이의 발굴 유물이 전시돼 있다. 발굴 당시 용암석 속 공간에 석고를 부어 보니 사람의 형태가 나타나 이를 형상화한 것이다. 온 몸을 비튼 개, 쪼그리고 앉아 마지막을 기도하는 듯한 사람, 겁먹은 표정의 아이, 임신한 채 엎드려 있는 여인... 화산 폭발 시 두려움에 떨면서 속절없이 희생된 이들의 처참한 모습이다. 눈에 밟혀 발길이 도저히 떨어지질 않는다. 당시 권력이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피신했으나 노예나 하녀 등이 집을 지키다 이런 피해를 봤다고 한다. 영화 폼페이 최후의 날에 그런 모습들이 그려진다.

 

일반 주택의 2층 건물 벽에는 하수 시설도 남아있다. 빵집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의 주방에는 성인 크기의 거대한 맷돌이 있다. 커다란 화덕도 있어, 여기가 피자의 탄생지가 아니었나 싶다. 공동 우물이 있다. 한 귀족의 저택 입구에는 개를 조심하라는 표식으로 짓는 표정의 큼직한 개가, 약국으로 추정되는 건물에는 뱀이 각각 그려져 있다. 기다란 뱀은 장수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공동 우물 2층의 하수 시설
배달 표식 귀족 저택 개조심

 

세계적 해상 교역도시인 폼페이는 외국인들이 많이 찾아오는 곳으로 언어가 서로 통하지 않았기에 이처럼 그림 표식이 많다. 당시 귀족들은 누워서 음식을 먹었단다. 무엇이든 먹고 남은 것은 버리고, 많이 먹어 몸을 불린다. 뚱뚱해야 미인으로 통한 탓이다. 식당으로 보이는 건물에는 배달을 했음을 알리는 표식이 있다. 택배문화가 여기서 비롯한 것이 아니었을까. 혹시 이들도 배달의 민족?

 

이어 아폴로 신전으로 향한다. 아폴로와 그의 쌍둥이 여동생 아르테미스를 모시는 신전이다. 정면에 흰색 제단과 14개의 계단이 보인다. 계단 위에는 28개의 기둥이 건물 지붕을 받치는 형상이나 현재 지붕과 기둥은 없다. 정면에 2개의 기둥만 복원된 상태다. 아폴로 상이 있고, 제우스신전 쪽에는 해시계도 있다.

아폴로 신전 아폴로 신전과 베수비오 화산

 

마리나 거리에는 야광석이 박혀 있다. 밤에 달빛에 반사돼 마차가 다니는 길임을 알려준다. 법정이나 집회 등에 사용된 큰 홀 형식의 공공건축물인 바실리카도 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바실리카다. 슬슬 마리나 문쪽으로 걸어가면 마지막으로 세탁소가 나온다. 당시 최고의 비누는 암모니아수. 그래서 맘에 드는 손님의 옷은 항아리에 모아둔 소변으로 세탁을 해준다. 그 항아리가 아직 남아있다. 젠장, 세탁소 주인 맘에 안 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이탈리아에서의 첫 외식은 베수비오 레스토랑. 물이 술처럼 병에 담겨 나온다. 외부에서 돈을 벌기 위해 온 악사가 테이블 주변에서 기타를 연주하면서 칸초네를 불러준다. 식당에선 와인을 고르라고 설명해준다. 서비스인줄 알고 기분좋게 골랐는데, 값을 따로 지불하란다. 하긴 밥만 먹는데 사스가 나올리 없지. 해물 스파게티와 해물튀김에 와인을 곁들여 허기를 채운다.

 

다음 행선지는 미항인 소렌토항. 구불구불 아름다운 해안도로를 따라 가노라면 멀리 베수비오 화산이 보인다. 소렌토항을 들어갈 때도, 나올 때도 구름이 걷힐 기미는 없다. 서운하지만 나름대로 운치는 있다. 소렌토는 지중해 바닷가 절벽 위에 세워진 도시다. 나폴리만을 사이에 두고 나폴리와 마주하고 있다. 기후 조건이 좋고 경치가 아름다워 오래 전부터 휴양지로 인기가 많다.

고대 로마인들은 이곳을 시레나(sirena)의 땅이라고 불렀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뮤즈 여신의 딸 시레나는 달콤한 노래로 선원들을 유혹해 바다에 빠뜨려 죽인다. 시레나는 머리는 여자, 몸은 새 형상이다.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이끈 오디세우스가 부하들을 이끌고 그리스로 돌아가던 중 자기 몸을 돛대에 동여매고 부하들의 귀를 막아 무사히 지나간다. 이에 분을 이기지 못한 시레나는 바다에 뛰어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이 신화의 배경이 바로 소렌토 앞바다다. ‘sirena’는 영어 사이렌이란 단어의 어원이기도 하다.

 

소렌토 하면 생각나는 칸초네가 있다. ‘돌아오라 소렌토로’. 1902년 이탈리아 수상이 남부의 가뭄 현장 순방을 마치고 마지막 날 소렌토에 들른다. 소렌토시장이 우체국 설립을 요청한 후, 쿠르티스 형제에게 잊지 말고 꼭 다시 돌아와 우체국을 지어달라는 의미의 노래를 지어 부르게 한다. 화가이자 시인인 형 잠바티스타 데 쿠르티스가 작사하고, 민요 작곡가인 동생 에르네스토 데 쿠르티스가 호텔 발코니에서 불과 세 시간만에 작곡한 노래가 그 유명한 돌아오라 소렌토로’. 고교시절 애달픈 사랑노래인줄 알고 열심히 배웠던 기억이 새록새록 하다. 결국 이 노래는 우체국 설립 청원가였고, 수상은 약속을 지켰단다.

 

아름다운 저 바다와, 그리운 그 빛난 햇빛, 내 맘 속에 잠시라도, 떠날 때가 없도다. 향기로운 오렌지 만발한, 아름다운 동산에서, 내게 준 그 귀한 언약, 어이하여 잊을까, 멀리 떠나간 그대를, 나는 홀로 사모하여, 잊지 못할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노라. 돌아오라. 이곳을 잊지 말고, 돌아오라 소렌토로. 돌아오라.”

 

오렌지 향기를 기억해 다시 돌아와 약속을 지켜달라는 내용이다. 떠나는 이를 다시 부르게 한 오렌지 향기는 지금도 여전히 소렌토에 가득 남아 있다. 소렌토에서 그 오렌지주스 맛을 보지 못한 것이 아쉽다.

 

다시 굽이굽이 돌아 반대쪽의 나폴리 시내로 향한다. 나폴리는 이탈리아 남부 캄파니아주의 행정중심도시다. 전형적인 지중해성 기후다. 평균 최저기온이 8도 이하로 내려가지 않는다. 나폴리의 옛 이름은 네아 폴리스. 네아는 뉴, 폴리스는 시티, 그리스 말이다. 그리스 식민지였다는 말이다. 나중에 로마인에게 병합되면서 로마의 도시로 바뀐다.

 

베란다 밖으로 빨래가 널린 낡은 아파트들이 눈에 들어온다. 비가 와도 빨래를 걷지 않는단다. 지중해성 기후는 습기가 많아 어차피 햇볕이 내리 쬐어야 마를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 저기 쓰레기더미들도 널브러져 게저분한 모습이 참으로 가관이다. 로마의 네로 황제가 나폴리의 아름다운 절경에 빠져 야외극장에서 가수로 데뷔할 정도로 그런 미항이라더니...

 

나폴리 지역의 마피아가 이권사업으로 쓰레기 수거사업에 진출한다. 이들은 수년째 밀라노 등 부유한 이탈리아 북부도시의 산업폐기물을 반입해 막대한 수익을 올린다. 이 때문에 캄파니아 주정부가 쓰레기 소각장 건립을 시도한다. 하지만 주민들이 다른 지역 쓰레기를 처리하기 위한 소각장을 내 앞마당에 만들 수 없다고 강력하게 반대해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가난하지만 거칠고, 걱정없이 사는 이탈리아 남부 사람들의 속성이 여실히 드러난다. 마피아가 자신들의 쓰레기 사업을 위해 주민들의 반대를 부추기고 있다니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다.

 

해변으로 들어서자 눈에 들어오는 누오보성. 새로운 오보성이란 뜻을 가진 이름이다. 13세기 나폴리를 통치하던 프랑스의 샤를 1세가 세운다. 2차 세계대전 때 떨어진 포탄이 성 안에 그대로 남아있다. 나폴레옹이 이탈리아를 점령했을 때 자신의 집무실로 이용한다. 지금은 박물관이다.

 

카이사르의 동상을 지나 드디어 나폴리항에 도착한다. 산타루치아항이라고도 한다. 나폴리 민요 산타루치아가 불린 곳이다. 어부들이 배를 타고 나가면서 나폴리의 수호성인 루치아에게 무사귀환을 기원하는 노래다.

 

창공에 빛난 별 물 위에 어리어, 바람은 고요히 불어오누나, 아름다운 동산 행복의 나폴리, 산천과 초목들 기다리누나, 내 배는 살같이 바다를 지난다, 산타루치아 산타루치아, 정 깊은 나라에 행복아 길어라, 산타루치아 산타루치아.”

 

항구 앞 즐비한 호텔 앞에는 1800년대 나폴리의 왕이었던 옴베르토 1세 동상이 세워져 있다. 건너편에는 오보성이 보인다. 1300년대에 노르만 왕이 지은 성이다. 비르질리오라는 마법사가 이 성에서 깨뜨리면 나폴리가 망한다는 달걀을 묻어뒀다고 해 달걀성이라고도 불린다.

저 멀리서 나폴리를 품고 있는 베수비오 화산은 여전히 구름 속에 숨어 있다.

 

반응형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