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2. 20.
영국 런던과 이탈리아 여행기7
유럽여행 일곱째 날!
유럽 여행의 막바지, 물의 도시 베네치아로 간다.
흉노족(훈족)의 침입으로 게르만족의 대이동이 시작된다. 안전에 위협을 느낀 내륙의 베네치아인들이 아드리아해 물 위에
살짝 드러난 개펄에 수만 개의 통나무를 촘촘히 박아 왕국을 세운다. 118개의 섬을 200여 개의 운하와 400여 개의 다리로 연결한 베네치아. 수로를 거치지 않고는 어디든 다닐 수가 없다.
여행가 무세가 성 마르코(마가)의 유해를 이집트에서 가지고 온 후 번성한다. ‘성인의 유해가 묻힌 도시는 멸망하지 않고 더욱 번성한다’는 믿음이 실현된 것이다. 이후 1천 년간 아드리아해의 해상권을 장악한다. 십자군 전쟁 때는 원정군의 휴식처로 번창하고, 동방과의 무역을 위해 로마교황청과 대립하던 때도 있었다. 지구 온난화 탓에 조금씩 가라앉고 있다. 최근 홍수로 1미터 높이까지 잠긴 적이 있다. 당시 산마르코 광장이 침수된다. 지금도 밀물 때는 일부 잠기는 곳이 많아 장화를 신고 다니거나 다리 사이에 다리를 놔 다닐 정도다.
베네치아 뱃길은 군데군데 세 개의 말뚝을 기대 세워 놓았다. 본섬에서 차나 오토바이는 찾아볼 수 없다. 수상택시와 수상버스, 베네치아의 상징 곤돌라 등 모두가 배다. 여기에 튼튼한 내 두 다리가 있을 뿐이다.
조차에 따라 바닷물이 들고 나면서 벽돌이 점점 침식돼 건물 1층은 대부분 방수막이 있고 공실이다.
산 마르코 광장으로 가는 길. 산타루치아역을 지나 ‘사계’라는 음악으로 잘 알려진 안토니오 루치오 비발디의 흔적을 찾아간다. 비발디가 태어난 생가, 살던 호텔, 다니던 성당이 연이어 있다. 건물 외벽에 비발디 표식이 있어 알아볼 수 있다. 이곳에서 정기적으로 매년 비발디 음악회가 열린다.
수로 사이로 기울어진 종탑도 보인다. 섬이 조금씩 가라앉으면서 기울어지고 있다. 지구 온난화의 상징이다. 피사의 사탑을 직접 볼 기회가 없었는데 이제 안 가 봐도 될 듯싶다.
좀 더 가면 이탈리아를 통일한 빅토리아 엠마누엘레 2세의 청동상이 있다. 빅토리아는 사르데냐 왕국의 왕이자 이탈리아 왕국의 왕이다. 이탈리아는 19세기 중엽까지 오스트리아, 프랑스, 로마 교황 등의 지배를 받는다. 북이탈리아의 사르데냐만이 독립을 지키고 있었다. 엠마누엘레 2세는 카보우르를 재상으로 등용하고 선정을 베풀어 국력을 높인다. 또 교묘한 외교술로 프랑스, 영국 등과 협상한다. 결국 방해꾼 오스트리아를 격파하고 통일 이탈리아의 1대 국왕이 된다.
이어 건물과 건물을 이어주는 ‘탄식의 다리’가 눈에 띈다. 총독부와 재판소가 있는 두칼레 궁전과 프리지오니 누오베 감옥을 연결해주는 다리다. 카사노바가 이 다리에 난 창문으로 아름다운 베네치아 풍경을 보고 절망적인 마음으로 탄식을 하며 감옥에 수감된다. 누오베 감옥은 절대 탈옥할 수 없는 구조인데도 카사노바는 성공한다. 돈과 교양, 화술을 두루 갖춰 너울가지가 좋아 사교계를 흔들면서 무려 122명의 여자를 꾀는 등 인맥이 대단했던 카사노바는 아마 간수들과도 끈이 닿았던 듯하다.
자코모 카사노바는 1725년 베네치아에서 배우 아버지와 성악가로서 '자네타'라는 애칭으로 유럽에 알려진 프리마돈나 조반나 파르시라는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다. 청소년기에 성직에 입문한다. 파도바 대학 법학부를 졸업한 수재다. 대학에서 여러 언어와 교양, 자연과학, 운동을 배웠다. 재력과 학식을 겸비한 그는 성직자의 신분을 이용해 여신도들을 꾀는 일탈행위를 일삼다 결국 교회에서 쫓겨난다. 우연한 기회에 베네치아 귀족의 양자가 되면서 돈까지 얻게 된다. 추기경과 베네치아 총독을 여러명 배출한 그리마니 가문의 미키엘 그리마니의 양자로 들어간 것이다. 학식에 재력까지 갖춘 카사노바는 수녀마저 끌어들인 난교 파티를 연다. 이 일로 기소돼 감옥에 갇히지만 이내 탈출한다. 베네치아 공화국이 카사노바를 스파이로 활용하기 위해 탈옥을 위장해 풀어줬다는 설도 있다. 당시 베네치아는 스스로를 지킬 힘이 없었다. 하지만 프랑스와 오스트리아 등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베네치아가 할 수 있는 것은 외교적 노력 뿐이었다. 결국 스파이 작전을 통한 외교노력으로 공화국을 보호하겠다는 고육지책을 쓰게 된다. 카사노바의 현란한 말솜씨라면 프랑스 등 정부 고위직과 귀족들의 아녀자들을 꾀어 고급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어쨌든 탈옥한 카사노바는 파리로 향한다. 이후 프랑스에서 루이 15세의 복권사업을 돕는 등 유럽 여러 곳의 궁정을 돌며 여러 사업에 손을 대 큰 돈을 벌지만 다 털린다. 40대 중반에 성기능 장애가 와 여성 편력 없이 쓸쓸하게 지낸다. 73세에 체코의 시골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훌륭한 재능에도 불구하고 평생을 편력과 그에 따른 빚, 사기행각으로 추방과 감옥을 전전하며 불안하게 살다 간다.
“내가 남들과 다른 한 가지가 있다면, 상대가 뭘 원하는지 알기 위해 내 전부를 걸었다는 점이다.”라는 명언을 남긴 채.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읽을 것인가는 결국 상상이 아니라 관찰에 있다는 뜻이리라.
카사노바의 파란만장한 삶 이야기를 뒤로하고, 나폴레옹이 극찬한 산 마르코 광장으로 향한다. 광장 입구 오른쪽엔 두칼레 궁전과 산 마르코 대성당이 별개인 듯 이어져 있다. 이어 16세기 정부청사로 건립된 건물이 ㄷ자 모양으로 에두르고 있어 하나의 거대한 홀처럼 보인다. 나폴레옹이 이를 두고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응접실”이라고 말했단다. 마가의 무덤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물이 제일 먼저 들어오고 빠져나가는 곳이어서 군데군데 물에 잠긴 곳이 많다.
두칼레 궁전쪽으로 가는 광장 입구에는 높다란 기둥 2개가 있다. 기둥 위에 베네치아의 수호신인 날개 달린 사자상과 성 테오도르 상이 있다. 우아한 산 마르코 대성당 앞에는 99미터 높이로 하늘을 찌를 듯 높다란 오벨리스크 기둥이 있다. 오벨리스크 옆에는 고대 그리스 시대의 청동말 네 마리가 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비잔티움에 옮겨놓은 것을 1204년 도제가 베네치아로 가져온다. 나폴레옹이 약탈했다가 워털루 전투에서 패한 후 반납한다. 대성당의 돔은 5개로 이뤄져 있다. ㄷ자 모양의 건물에는 박물관을 비롯해 카페, 살롱, 매장 등이 줄지어 있다. 테오도르 상을 지나 남쪽 건물 중간쯤에 유명한 ‘플로리안 카페’가 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되고 아름다운 카페다. 여기서 커피 맛을 봐야 한다는데 사람들로 꽉 차 있다. 빙 둘러 눈으로만 담아간다.
1720년 개업해 300년 넘게 영업 중이다. 괴테, 니체, 나폴레옹, 스탕달, 바이런, 릴케, 찰스 디킨스, 마네, 모네 등 세계의 명사들이 찾은 곳이다. 이곳을 더 유명하게 해준 인물은 단연 카사노바. 베네치아에 머물던 카사노바는 작업을 걸기 위해 이 카페를 들락거린다.
이탈리아인은 커피를 좋아한다. 이슬람에서 처음 커피가 유럽으로 건너올 때 검은색이어서 ‘악마의 물’이라 부른다. 그런데 교황 클레멘스 8세가 맛을 본 후 “이렇게 좋은 걸 이슬람인들만 마시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커피를 축복하자 유행하게 된다. 이탈리아에서는 빵과 에스프레소 한 잔이 아침 식사로 통할 정도다. 이탈리아의 커피 이름은 대부분 모음으로 끝난다. 가장 대중적인 에스프레소를 비롯해 카페라떼, 카푸치노, 마키아또, 모카... 에스프레소는 빠르다는 뜻의 ‘Express’에서 비롯됐다. 뽑는 시간이 20~30초. 마시는 것도 세 모금이면 끝이다. 여기에 물을 더 부으면 우리나라에서 즐기는 아메리카노가 된다.
ㄷ자를 뺑 돌아 끝나는 자리, 산 마르코 대성당 바로 옆에는 명품 골목도 있다. 명품 골목까지 가기 전까지는 전통 가면 매장이 많다. 산 마르코 광장에서는 매년 1~2월 베네치아 카니발이 열린다. 가장행렬과 가면 무도회, 음악 공연 등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가면 축제’라고도 한다. 베네치아에 가면을 쓰는 풍습이 등장한 것은 13세기 무렵. 제4차 십자군 원정대가 귀환하면서 데려온 이슬람교도 여성들이 착용한 베일을 보고 유행한다.
유리공예 매장도 즐비해 있다. 베네치아는 13세기 이집트, 페니키아와 교역하면서 유리공예 기술이 발달한다. 전 유럽에 수출할 정도였다. 기술 유출을 우려한 베네치아 공화국은 장인들을 무라노섬에 이주시켜 폐쇄적 운영을 한다. 그 명맥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유리공예 가게에서 아내와 딸에게 줄 커플 목걸이를 구입한다. 무라노 브랜드가 찍혀있다. 물론 제품 보증서도 있다. 내 눈에는 좋아 보이는데, 아내가 좋아할는지.
수상택시를 타고 베네치아 S자 대운하를 시원스레 달려본다. 건물 사이로 좁다란 운하, 섬과 섬을 잇는 작은 다리, 소방서의 소방차(배), 경찰서의 순찰차(배), 나무가 심어진 저택, 곤돌라 타는 모습 등이 빠른 속도로 스쳐 지나간다.
그 유명한 베니스 영화제는 휴양지 리도섬에서 8~9월 열린다. 1932년 창설돼 베를린 영화제, 칸 영화제와 함께 세계 3대 국제 영화제로 꼽힌다. 최고상은 황금사자상이다. 1987년 강수연이 ‘씨받이’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다. 당시 TV 자막에 전해진 수상 소식이 어렴풋하게나마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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