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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강의 해외여행

샛강의 영국여행, 런던 하이드파크, 버킹엄궁전, 트라팔가광장, 빅벤, 런던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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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2. 16.

 

영국 런던과 이탈리아 여행기3

유럽여행 셋째 날!

 

로마가 만든 2천 년 도시, 런던 시내를 둘러볼 차례다.

런던은 43년 로마인이 론디니움(Londinium) 요새를 건설한 것에서 비롯됐다. 런던을 흐르는 강은 템스강이다. ‘테네시스라는 탁하다는 뜻에서 유래했다. 예나 지금이나 흐르는 물이 매우 탁하다. 영국에는 또 스터로 끝나는 지명이 많다. 축구선수 박지성이 뛰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연고지 맨체스터를 비롯해 랭커스터, 윈체스터, 레스터, 체스터... 이들 지역은 대부분 고대 로마의 점령지다. 로마 군영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영국의 가장 큰 섬은 그레이트브리튼. 섬의 2/3는 남쪽 잉글랜드(13 440), 1/3은 북쪽 스코틀랜드(7 8770), 나머지 서쪽 웨일스(2 760)로 이뤄졌다. 여기에 북아일랜드(1 4120)와 수많은 작은 섬이 있다.

빙하기 시절 유럽과 연결돼 있어 구석기와 신석기 문명을 일군다. 스톤헨지가 유명하다. 원시공동체를 지나 그리스에 도시국가가 생기던 기원전 8세기 철기인 켈트족이 브리튼에 들어와 고대 영국을 세운다.

 

이어 고대 로마의 시저가 브리튼의 유력자인 카시벨라우누스를 격파하고 조세를 바치겠다는 약속을 받지만 이후 로마가 내전에 접어들면서 흐지부지 된다. 이후 클라우디스 황제가 다시 브리튼을 정복, 300년을 지배한다. 하지만 켈트족이 로마제국의 군인황제시대 혼란을 틈타 투쟁을 시작, 400년께 로마군이 철수한다. 이후 암흑기를 거쳐 아서왕의 전설을 남기면서 역사의 중심은 켈트족에서 앵글로색슨계로 넘어간다.

 

최초 통일 왕조는 웨식스왕조(West Saxon 6세기 초-1016). 에그베르트가 웨식스, 머시아, 노섬브리아, 이스트앵글리아, 에식스, 서식스, 켄트, 7왕국 모두를 정복하고 종주권을 인정받아 역사상 첫 잉글랜드 왕으로 군림한다.

 

바이킹 족이 호시탐탐 본섬을 약탈하면서 덴마크왕조(Danish Dynasty 1016-1042)가 지배하다 색슨왕조(Saxon Dynasty 1042-1066)를 거친다.

 

1066년 정복왕 윌리엄 1세가 왕으로 즉위하면서 프랑스계 노르만왕조(Norman Dynasty 1066-1154)의 지배가 시작된다. 이때부터 정략결혼을 통해 영국 왕은 프랑스 영토를 확보해간다. 프랑스의 봉건제를 도입하지만 앵글로색슨의 전통을 존중, 영국의 독자적 봉건사회가 뿌리내린다.

왕위 계승을 놓고 20년 가까운 내분 끝에 윌리엄의 손녀인 마틸다의 아들 헨리 2세가 왕위를 계승한다. 외손이므로 성이 바뀌어 프랑스계 플랜태저넷왕조(The Plant genets 1154-1399) 시대가 열린다. 당시 영국 왕이 프랑스 왕보다 프랑스 내 영토를 더 많이 확보하게 된다. 영국을 프랑스 출신 왕이 지배하지만 프랑스의 땅은 영국이 더 많이 갖고 있어, 두 나라의 실제 주인이 누군지 헷갈린다. 헨리 2세는 왕권을 확대하지만 다음 사자왕 리처드 1세는 십자군 원정에 관심을 둔다. 그 아우 존은 교황에게 국토를 바치는 불명예를 초래한다. 결국 1215 마그나 카르타에 서명한다. 에드워드 3세는 백년전쟁을 일으키고, 최후의 왕 리처드 2세가 랭커스터가의 헨리(후의 4)에게 폐위당해 왕가는 끊긴다. 왕권이 강화되고, 신분제가 생긴 시대다. 백년전쟁은 영토 분쟁과 프랑스 왕위 계승 문제를 놓고 1337년 시작된 프랑스와의 전쟁이다. 처음 영국에게 유리했던 전황은 신의 계시를 받았다는 오를레앙 잔다르크의 활약으로 프랑스가 승기를 잡는다. 전쟁을 승리로 이끈 잔다르크는 그러나 프랑스 왕위 쟁탈전에서 밀려난 세력에게 붙잡혀 영국으로 송환된다. 1431년 마녀로 지목돼 화형을 당한다. 116년간 이어진 백년전쟁에서 패한 영국은 프랑스 내 영토를 모두 빼앗긴다. 프랑스에선 백년전쟁으로 농토가 황폐해져 봉건 기사 세력이 몰락하고 중앙집권적 절대 왕정이 시작된다.

 

백년전쟁 중 플랜태저넷왕조 에드워드 3세의 손자인 헨리 4세가 랭커스터 왕조(House of Lancaster 1399-1471)를 연다. 백년전쟁을 유리하게 이끈 헨리 5세에 이어 헨리 6세가 즉위하지만 병약해 랭커스터왕조의 방계인 서머싯 공과 요크가의 리처드가 정권 쟁탈전을 벌여 장미전쟁이 일어난다.

 

리처드의 아들이자 플랜태저넷왕조 에드워드 3세의 고손 에드워드는 1461년 국왕군을 격파하고 에드워드 4세로서 요크왕조(House of York 1471-1485)를 세운다.

 

이후 랭커스터왕조의 방계 출신인 헨리 7세가 보즈워스전투에서 요크왕조를 무너뜨리고 튜더왕조(House of Tudor 1485-1603)를 연다. 30년간 이어진 장미전쟁은 랭커스터가의 빨간 장미와 요크가의 하얀 장미 문양을 빗댄 것이다. 전쟁에서 승리해 튜더왕조를 연 랭커스터가의 헨리 7세는 요크가의 엘리자베스와 결혼해 두 가문의 화해를 이끈다. 이후 5 118년을 이어간다. 헨리 7세는 장미전쟁에 따른 유력 귀족의 몰락을 이용해 왕권을 강화, 절대주의의 기초를 닦는다. 아들 헨리 8세는 왕권 강화 명목으로 교회 재산을 빼앗기 위해 종교개혁을 한다. 로마 교황청과 절연하고 영국 국교회(성공회)를 수립한다. 왕권 강화는 명분일 뿐, 당시 세계 최강 스페인의 공주출신인 형수 캐서린과 마음에 없던 결혼을 했다가, 까만 눈의 시녀 앤 볼린과 결혼하기 위한 것이 진짜 이유다. 성공회로 믿음을 바꾸지 않으면 무자비하게 처형한다. 무려 6번이나 결혼을 하지만 자녀는 셋 뿐이다. 앤 볼린이 아들을 낳지 못하자 여러 가지 죄목을 이유로 런던탑에서 참수한다. 이튿날 앤 볼린의 시녀 제인 시머와 결혼해 아들 에드워드를 낳는다. 에드워드는 마크 트웨인의 소설 왕자와 거지의 주인공이다. 헨리 8세 사후 세 자녀가 차례로 왕권을 이어받는다. 세 번째 왕비와 사이에 태어난 에드워드 6세는 종교개혁을 촉진하나 몸이 약해 후사 없이 죽는다. 이어 첫 왕비 캐서린과의 딸 메리 1세가 계승한다. 가톨릭교국인 스페인의 펠리페 2세와 결혼하고 가톨릭교 반동을 추진, 성공회와 청교도를 무수히 화형시킨다. ‘피의 메리로 통할 정도다. 그녀에게도 아이가 없다. 때문에 두 번째 왕비 앤 볼린의 딸 엘리자베스 1세가 즉위한다. 성공회 때문에 자신의 어머니가 왕비가 된 지라 이번엔 가톨릭과 청교도를 금지하며 처형한다. 에스파냐의 무적함대를 무찔러 영국 절대주의의 황금시대를 이끈다. 대문호 셰익스피어도 이 시절 활동한다.

 

엘리자베스 1세는 평생 독신이었기에 사후 스코틀랜드계의 스튜어트왕조(House of Stuart 1603-1649)로 바뀐다. 헨리 7세의 딸 마거릿이 스코틀랜드로 시집가 남긴 후손이다. 노르만왕조 프랑스계 귀족의 혈통을 계승한 가문이다. 중세 말기에서 근세에 걸쳐 스코틀랜드와 영국을 함께 통치한다. 16세기 중반 메리 스튜어트 여왕에 이어 그녀의 외아들 제임스 6세가 왕위에 오른다. 영국왕으로서는 제임스 1세다. 제임스 1세가 종교 탄압에 느슨해지자 엘리자베스 1세 때 탄압받던 가톨릭 교도들이 국왕과 귀족, 하원의원들을 모두 죽이기 위해 1605 11 5 가이 포크스의 화약음모를 꾸민다. 국회 개원식 때 국회 지하실에 화약을 설치하지만 일당 중 한 명이 밀고해 실패한다. 이후 지금까지 11 5 가이 포크스의 날에는 그의 화형식과 함께 불꽃놀이를 즐긴다. 청교도들은 1620 메이 플라워호를 타고 종교의 자유를 찾아 아메리카로 떠난다. 제임스 1세와 그 아들 찰스 1세는 왕권신수설을 신봉해 전제정치를 한다. 크롬웰이 이끈 청교도혁명의 화근이 돼 1649년부터 1660년까지 공화정이 열린다.

 

크롬웰 사후 왕정이 복구된다. 스튜어트왕조 부활(House of Stuart Restored 1660-1714)로 왕위에 오른 찰스 2세와 아우 제임스 2세는 재차 전제정치를 강행한다. 결국 명예혁명이 일어나 제임스 2세는 프랑스로 망명하고, 그의 장녀 메리와 그녀의 남편 윌리엄이 네덜란드에서 영입돼 메리 2, 윌리엄 3세로 공동 즉위한다. 이후 가톨릭을 신봉하는 제임스 2세가 왕위에 복귀하려는 자코바이트 음모가 일어나지만 의회가 왕위계승법을 제정해 막는다. 왕위계승법은 국왕의 장자 우선, 성공회 신자를 원칙으로 한다. 아들이 없으면 장녀가 계승할 수 있다. 유럽에서 남성 우선 왕위계승 원칙을 지키는 왕실은 스페인, 덴마크, 모나코 등이 있다. 성별 관계없이 첫째가 왕위를 계승하는 왕실은 스웨덴, 벨기에, 노르웨이, 네덜란드 등이 있다. 윌리엄 3세의 뒤를 이은 앤 여왕 시대에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는 스튜어트왕조의 왕위 겸위상태를 해소한다. 1707년 잉글랜드와 웨일스, 스코틀랜드 합병으로 그레이트브리튼이 탄생한 것이다.

 

앤 여왕이 후사 없이 죽자 왕위는 하노버의 소피아에게 돌아가고, 그녀의 아들이 조지 1세로 즉위해 독일계 하노버왕조(House of Hanover 1714-1901)가 열린다. 조지 1세는 스튜어트왕조의 시조 제임스 1세의 딸 마거릿 스튜어트가 독일로 시집가 낳은 손자다. 영어를 못하는데다 정치에도 관심이 없어 의회정치와 책임내각제 발달을 촉진한다. 조지 3세는 왕권 회복을 노리지만 오히려 미국 독립을 초래한다.

 

이후 남자 후손이 없어 윌리엄 4세의 질녀 빅토리아가 여왕이 된다. 과학기술을 진흥해 재위 64년간 대영제국이 최대 번영을 누린다. 그녀의 아들 에드워드 7세가 작센-코부르크-고타왕조(House of Saxe-Coburg-Gotha 1901-1910)라 개칭한다. 빅토리아 여왕 남편인 독일계 앨버트(Albert) 공의 성을 따른 것이다.

 

하지만 1차 세계대전으로 독일이 적국이 되면서 조지 5세 시대인 1917년 윈저왕조(House of Windsor 1917- )로 바뀌어 현재에 이른다. 조지 5세의 말년은 아름답지 못했다. 장남 에드워드는 유부녀와 불륜을 즐긴데다 왕정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고, 차남은 연약한 신체와 심각한 말더듬증을 겪었다. 결국 조지 5세 사후 왕위에 오른 에드워드는 미국의 이혼녀 월리스 심슨과 결혼하기 위해 재위 11개월만에 동생에게 왕위를 양보한다. 동생은 조지 6세.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버킹엄 궁전을 끝까지 지킨다. 그의 사후 장녀 엘리자베스 2세가 왕이 된다. 엘리자베스 2세 역시 찰스 왕세자가 1996년 다이애나 왕세자비와 이혼하는 스캔들을 일으킨다. 다이애나는 이후 1997년 프랑스에서 파파라치를 뿌리치다가 교통사고로 숨진다. 이런 수난에도 불구하고 엘리자베스 2세는 2018년까지 무려 66년을 재위하며 고조할머니 빅토리아 여왕의 기록을 깨뜨렸고 여전히 건강하다. 찰스 왕세자에게는 안 된 일이지만. 찰스는 고구려 장수왕의 아들 조다처럼 왕위를 잇지 못하는 영국의 왕세자가 되지 않을까 싶다. 현재 영국 왕은 세계에서 남아있는 왕 가운데 가장 존경받는 왕으로 꼽힌다. 비록 군림하나 통치하진 않는다.

문화, 교육의 중심지인 런던 서쪽으로 가니 400년 역사의 하이드파크가 있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의 최전성기를 이끈 빅토리아 여왕과 부군인 앨버트 공작의 애틋한 사랑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앨버트 공 기념탑이 공원 입구 중앙에 자리하고 있다. 탑 안에는 동상이 화려한 금박으로 빛난다. 그 아래는 4개 대륙을 상징하는 대리석 동물 조각이 있다. 앨버트는 문화, 예술, 과학의 도시를 가꾸고 싶은 꿈을 키운다. 1851년 이곳에서 만국박람회를 개최한다. 무려 7의 건물을 철골과 유리로만 지은 수정궁으로 유명하다. 이를 기념해 동상이 세워진다. 빅토리아 여왕은 앨버트를 너무나도 사랑하고 순종했단다. 그래서 영국 곳곳의 거리, 건물 등 이름에 앨버트가 등장한다. 가터의 기사 복장을 하고 만국박람회 안내장을 들고 있는 앨버트 공이 바라보는 곳은 공원 맞은편의 앨버트메모리얼. 8천여 명의 관람객을 수용할 수 있는 초대형 돔 건물이다. 하이드파크는 영국식 정원의 대표적 본보기다. 면적이 자그마치 142. 끝이 안 보이는 어마어마한 규모다. 여기서도 조깅을 즐기는 시민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하이드파크 산책을 마치고 시내로 들어간다. 긴 치마를 입은 켈트족 복장의 한 사내가 백파이프를 연주한다. 켈트족은 서구 문명의 원류로 통한다. 로마시대엔 갈리아인으로 불렸다. 현재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에 순수 켈트족이 살고 있다.

 

웰링턴 장군의 워털루전투 승리를 기념한 개선문을 지나면 새하얀 웨스트민스터 사원이 나온다. ‘서쪽에 있는 대사원이란 뜻의 성공회 사원이다. 성공회는 영국의 국교다. 영국에서 가장 높은 고딕 양식의 중세교회다. 7세기 초 처음 건설돼 11세기 참회왕 에드워드가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증축한다. 12세기 헨리 3세가 고딕 양식으로 개축한다. 18세기 2개의 첨탑이 세워지면서 현재까지 이어진다. 참회왕 에드워드가 죽고, 정복왕 윌리엄이 왕위를 빼앗아 대관식을 치른 이후 1천 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에드워드 5세와 8세를 제외한 영국의 모든 왕이 이곳에서 대관식을 하고 있다. 왕실의 결혼식과 장례식도 이곳에서 치른다. 내부에는 역대 왕과, 정치가(처칠, 글래드 스톤 등), 문학가(셰익스피어, 워즈워스, 찰스 디킨스 등), 과학자(뉴턴, 다윈 등), 음악가(헨델 등)가 잠든 묘와 기념비가 있다. 묘만 자그마치 3천여 개. 최근 타개한 스티븐 호킹 박사도 여기 묻혔다. 중앙에는 무명용사의 묘가 있다. 전쟁 참전 용사에 대한 예우가 얼마나 대단한 지 알 수 있다. 이 정도 예우를 해주니 전쟁이 나면 자원해 입대하는 문화가 생긴 것이란다. 여기에 왕자들이 최전선에서 지휘해 국민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것도 자원 입대를 부추기는데 한몫 하고 있다. 우리가, 아니 우리나라 지도층들이 본받아야 할 덕목이 아닌가 싶다. 뉴턴의 묘와 챕터 하우스도 있다. 영화 다빈치 코드의 배경이 된 이후 지금까지 수많은 관광객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다. 2011 4월 윌리엄 왕자와 케이트 미들턴의 세기의 결혼식이 열린 장소다.

 

이어 국회의사당이 있다. 원래는 약 1천여 년 전 참회왕 에드워드를 위해 지은 궁전이다. 그 뒤 1500년대 초반 헨리 8세까지 왕궁으로 사용한다. 의사당에는 높이 102m나 되는 빅토리아타워가 있다. 개원 중에는 이 탑에 국기가 게양된다. 국회 뒤로는 탁한 템스강이 유유히 흐른다.

 

국회 옆에는 뾰족하게 솟아오른 시계탑 빅벤이 있다. 빅벤은 크다는 뜻의 ‘Big’과 시계탑 설계자 벤자민 홀의 이름에서 ‘Ben’을 합친 말이다. 시계탑 안에는 13.5톤에 달하는 종이 있다. 시침의 길이는 2.9미터, 분침의 길이는 4.2미터다. 시계가 처음 작동한 이후 단 한 번도 멈추지 않을 정도로 정교함을 자랑한다. 높이 96미터, 시계 문자판 지름 7미터다. 런던의 랜드마크지만 새단장을 위해 4면 모두가 철골로 둘러싸여 있다. 템스강 웨스트민스터 브리지쪽의 한 면에서 겨우 시계만 볼 수 있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노여울 뿐이다.

 

런던아이 런던아이와 2층버스

템스강을 사이에 두고 국회 대각선 맞은편에선 세계에서 가장 큰 대관람차인 런던아이가 멈춘 듯 뱅글뱅글 돌고 있다. 자전거 바퀴처럼 생긴 동그란 휠에는 32개의 캡슐이 있다. 1개의 캡슐에 최대 25명이 탑승한다. 한 바퀴 도는데만 30. 21세기 밀레니엄계획에 따라 영국 브리티시항공에서 135m 높이로 세웠다.

 

다시 국회의사당쪽으로 가면 공원에 처칠 동상이 있고 서 있는 링컨 동상도 있다. 미국에선 모두 앉은 모습이지만 런던에서만큼은 앉아있을 수가 없단다.

 

버스를 타고 다음으로 향한 곳은 버킹엄 궁전. 1703년 버킹엄 공작 존 셰필드의 저택으로 세워진다. 1837년 빅토리아 여왕이 즉위하면서 궁전으로 격상돼 이후 역대 왕들이 살고 있다. 겨울철 이틀에 한 번씩 오전 11 30분에 펼쳐지는 궁전 내외 호위 담당 왕실 근위병의 교대식이 장관이다. 윈저성과는 규모면에서 차원이 다르다.

 

근위대는 척탄병 근위대(Grenadier Guards), 콜드스트림 근위대(Coldstream Guards), 스코트인 근위대(Scots Guards), 아일랜드인 근위대(Irish Guards), 웨일스인 근위대(Welsh Guards), 다섯 부대로 구성돼 있다. 짙은 남색깃을 단 붉은색 상의에 검은 곰털로 만든 원통형 모자를 착용한다.

 

 

잠깐 버스를 타고 옮겨간 곳은 트라팔가 광장. 런던에서의 마지막 여행지 다. 이곳은 원래 버킹엄 궁전의 외양간 자리다. 1805년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영국의 호레이쇼 넬슨 제독이 나폴레옹군을 격파한 것을 기리기 위해 조성됐다. 광장 왼쪽에는 오른손엔 지도, 왼손엔 칼을 든 넬슨 제독의 동상이 반갑다고 맞이한다. 넬슨보다 더 높은 자리에 비둘기가 내려앉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광장 한가운데엔 높이 56m의 넬슨 기둥이 하늘 높이 솟아 있다. 기둥 위에는 E. H. 베일리가 제작한 높이 5미터의 넬슨 동상이 버킹엄 궁전쪽을 바라보고 있다. 기둥 밑 부분에는 넬슨의 4대 해전이 부조로 조각돼 있다. 각 네 개의 모서리에는 에드윈 랜드시어 경이 조각한 사자가 앉아 있다. 프랑스로부터 빼앗은 대포를 녹여 만든 것이다. 사자를 본 적이 없는 랜드시어는 앞다리를 쭉 늘어뜨린 잘못된 모습으로 조각했다. 트라팔가 광장을 중심으로 내셔널 갤러리, 피카딜리 서커스, 화이트홀, 더 몰이 있다. 5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이 광장에서는 집회나 콘서트 등이 자주 열린다.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총탄을 맞은 넬슨은 전투의 승리가 확실시된다는 보고를 받고 내 임무를 다 할 수 있게 해준 신께 감사드린다며 숨을 거둔다. 여기에 술에 얽힌 흥미로운 일화가 있다. (Rum)주다. 영국까지의 긴 항해 기간 동안 유해의 부패를 막기 위해 럼주를 관 속에 가뜩 채운다. 영국에 도착해 뚜껑을 열어보니 럼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넬슨의 용기와 전투 능력, 그의 위엄에 존경심을 표하던 부하들이 그의 혼이 담긴 술이라며 마신 것이다. 관 속의 술을 넬슨의 피(Nelson’s blood)’라고 부르면서. 이후 영국 해군 장병들에게 배급되는 럼주는 넬슨의 피라는 애칭으로 불리게 된다.

 

런던의 맛집이라는 난도스 체인점에서 닭고기 요리로 배를 채운다. 매운 고추 소스를 치킨에 버무려 구운 음식이다. 바삭한 맛이 없어 치맥이 생각날 정도는 아니지만, 먹을 만하다. 런던 식당은 역시 곁들여 나오는 빵이 최고다. 조그마한 사과도 맛있다.

 

런던 시내를 훑어보다시피 빠져나가는 아쉬움을 아는지 모르는지 버스는 멈춤 없이 교외로 내달린다. 멀리 런던의 상징인 템스강 하류의 타워브리지가 보인다.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크고 작은 고딕풍의 첨탑이 있어 마치 동화 속 중세의 성이 떠오른다. 교각 중앙이 개폐식으로 돼 있다. 큰 배가 통과할 때 90초에 걸쳐 무게 1t의 다리가 들린다. 템스강 둑(뱅크) 위에 위치해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고층 건축물이 즐비한 금융가를 지난다. 은행(뱅크)의 유래에 대해 떠올려본다.

 

런던 남쪽으로 가는 차창 밖 고속도로변. 겨울인데도 푸르른 초원이 널따랗게 펼쳐진다. 군데군데 말과 양떼들이 눈에 들어온다.

 

게트윅 공항에 도착한다. 주로 유럽계 항공사가 취항하는 공항이다. 이제 런던과 아쉬운 이별을 해야 할 때다. 언제나 또 올 수 있으려나.

 

이지젯을 타고 저녁 무렵 새로운 여행지 이탈리아 로마에 도착한다. 로마 남서쪽에서 약 30킬로미터 떨어진 지점에 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국제공항. 피우미치노 공항(Fiumicino Airport)이라고도 한다. 로마 시내에서 서쪽으로 34km 떨어진 피우미치노에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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