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6. 2.
여행 마지막 날, 밤 늦은 시간까지 온종일 시내 관광이 잡혀있다. 아침 일찍 짐 정리를 마치고, 리조트 로비로 향한다. ‘이 더위에 어찌 애들 데리고 시내를 돌아다닐까?’ 걱정이 앞선다. 체크아웃 후 버스를 기다리는 사이 로비 한 구석에서 아름다운 선율이 귓가에 맴돈다. 말레이시아 전통악기 퉁(Tung) 연주 소리다. 가까이 가 연주자에게 한국 사람이라고 했더니 빙그레 웃으며 ‘아리랑’을 들려준다. “뜨리마까시~”. “싸마싸마~”.
하늘이 불볕더위 걱정 소리를 들었는지, 버스가 시내로 들어서자
부터 비가 주룩주룩 창문을 적신다. 다행히도 점심 때가 돼 식당부터 찾았지만 좀처럼 그칠 것 같지가 않다. 우리네 샤브샤브와 같은 스팀보트를 배부르게 먹는다. 첫 행선지인 옛 사바주청사에 다다를 즈음에야 비가 그친다. 다행이다. 비를 맞지 않아서 좋고, 덥지 않아서 또 좋다. 우리 일행들이 전생에 덕을 많이 쌓았나보다.
원형 통유리 건물이 인상적인 옛 사바주청사는 ‘사바 파운데이션’이라 불린다. 한때 ‘툰 무스타파 타워(Tun Mustapha Tower)’라고도 불린 건물이다. 말레이시아 독립운동가이자 서민의 영웅으로서 사바주의 독립과 경제 발전을 이끌어 첫 주지사를 역임한 툰 무스타파의 이름을 딴 것이다. 하지만 툰 무스타파는 독립 이후 여러 가지 정치적 이슈에 휘말린데다, 부정축재 등의 이유로 건물 이름을 빼앗기고 만다. 건물 모양 때문에 ‘로켓빌딩’이란 별명도 있다.
32층 72개 면이 모두 유리로 된 112미터의 고층건물이다. 사바주에서 가장 높다. 32층은 원주민 부족 수를, 72개 유리면은 언어 수를 나타낸 것이란다. 특이한 모양인데다 매우 높아 멀리서도 쉽게 눈에 띈다. 코타키나발루의 랜드마크다. 1977년 건설됐다. 현재는 부식돼 사용하지 않고 있다. 외기둥 원통형 건물이어서 이탈리아 피사의 사탑이나 베네치아의 기울어진 종탑처럼 약간 기울어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외기둥 공법은 건설도 어렵고 불안정한 것이 특징이다. 이 건물이 기울어진 이유다. 코타키나발루에서 유일한 도시적인 볼거리지만 언제 철거될지 모른다. 실제로 건물 앞에는 지진 강도 2.0 이상이면 무너질 수 있다는 표지판이 있다. 현재 1층에 대강당, 전시관, 도서관 등이 들어서 있고 주 청사는 건너편에 새로 지어졌다.
건물을 손으로 들어보이는 포즈, 머리에 이는 포즈 등 다양하게 사진을 찍어본다. 기울어진 탓에 건물을 밀어보는 포즈로 찍기도 한다는데, 이 건물이 무너지기라도 하면 괜스레 우리 탓을 할까봐 이것만은 참는다. 사실 날이 더워서 아이들이 여러 포즈로 사진 찍는 것을 귀찮아 한 이유가 더 크다. 우리 한결이는 건물을 뒷배경으로 하는 사진보다는 오랑우탄 조형물에 얼굴을 쏙 내밀고 찍는 것을 더 재밌어라 한다. 시현이가 그 옆에서 오랑우탄 숭내를 내 웃음을 안겨준다. ㅋㅋ 역시 아이들이다. 그런데 웬 오랑우탄 조형물이 예 있을까? 오랑우탄의 세계 최대 서식지가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말레이어로 ‘오랑’은 사람, ‘우탄’은 숲을 뜻한다. 따라서 오랑우탄은 ‘숲에 사는 사람’이란 뜻이다. 이곳 원주민들에게는 친구와 같은 존재다. 옛 청사와 건너편의 현 청사를 배경삼아 가족사진과, 세 가족 단체사진을 찍고는 다음 관광지로 발걸음을 옮긴다.
이슬람사원인 ‘사바 주립 모스크’ 주위를 버스로 돌아본다. 바다와 가까운 리카스만 인근에 1977년 지어졌다. 일명 '블루모스크'다. 푸른색과 하얀색 단 두 가지 색으로만 지어졌기 때문이다. 둘레에 해자(垓字)를 파놓아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듯 신
비로운 느낌이 든다. 해자는 동물이나 외부 사람의 침임을 막기 위한 용도다. 성이나 건물 주변에 넓고 깊은 구덩이를 만들어 물을 채워 넣은 못이다. 지상에 푸른 모습을 한 블루모스크와, 맑고 잔잔한 물에 잠긴 블루모스크가 맞닿아 있는 모습, 두 개의 블루모스크를 사진에 담아본다. 푸른 하늘과 흰 구름, 푸른 해자까지 잘 어우러져 아름답다. 석양 때
또 다른 매력이 있다는 데 보지 못해 아쉬울 따름이다.
본래 모스크는 첨탑의 개수로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고 한다. 이 모스크는 4개의 기둥으로 이뤄져 사바주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각각의 기둥은 방향을 표시한다고 한다. 돔과 첨탑은 예스럽고 건물 자체는 현대스러워 양식의 조화가 돋보인다. 지붕을 정육각형의 순금
으로 치장하고, 벽면과 기둥에도 순금의 코란 글씨를 새겨놓았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이슬람 성지 메디나에 있는 ‘나바위 모스크’를 본떠 만들었다.
이제 바닷가로 향한다. 와리슨 스퀘어 앞 워터프론트.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석양을 볼 수 있다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비가 계속 내렸다, 그쳤다를 반복한다. 석양을 기대하기 힘들 것같은 날씨다. 시원한 맥주 한 잔을 껄떡껄떡 들이켜면서 붉은 노을에 빠져드는 추억을 기대했건만, 날씨가 도와주질 않는다. 석양 감상을 포기하고, 인근의 과일 야시장을 구경한다. 이따가 저녁 식사 후 디저트용으로 망고를 한 봉지 산다.
코타키나발루에서의 마지막 식사는 한식이다. 썩 한국맛은 아니지만 먹을만 하다. 한식당
이어선지, TV에선 프로야구 중계를 해준다. 요새 죽을 쑤고는 있지만 그래도, 타이거즈를 안주 삼아 소맥을 꼴깍꼴깍 마신다.
아직 공항으로 가기에는 여유가 있어 이마고몰 쇼핑센터로 발걸음을 옮긴다. 엄마들은 딸랑구 셋을 데리고 쇼핑하는 재미에 푹 빠진다. 덕분에 허리띠를 득템했다. 아빠들은 사내 두 녀석을 데리고 어슬렁거리다가 쇼핑센터 입구 공연장에서 발걸음을 멈춘다.
매시 정각 키나발루산에 사는 원주민 오랑울루족이 전통공연을 펼친다. 오늘 공연은 대나무춤. 날렵한 춤사위로 한판 흥을 돋우더니 체험하고 싶은 관광객을 찾는다. 재빠르게 한결이 손을 치켜들었더니, 나오란다. 내성적인 우리 한결이, 안 나간다 할 줄 알았는데 웬걸, 좋다고 나간다. 옆에 있던 승우도 덩달아 같이 나간다. 두 녀석 대나무춤 잘도 따라 한다. 어린 애들이라 쉬운 걸로 하긴 했지만. 박수를 받은 것은 물론 ‘숲에 사는 사람’ 친구인 오랑우탄 인형 선물도 받는다. 쇼핑을 마친 엄마 셋은 아직 공항에 갈 시간이 더 남았다며 마사지 받으러 가시겠단다. 아빠 둘은 아이 다섯을 조롱조롱 데리고 버스에 올라탄다. 아이들은 지네들끼리 게임을 한다. 아빠 둘은 기다림이 무료해 말레이시아 전통 술을 한 병 사 주거니 받거니 하다, 공항으로 향한다.
문명과 원시림이 공존하는 휴양지 코타키나발루, 이제 작별을 고할 때다. ‘바람 아래의 땅’ 사바주, 그 중에서도 ‘죽은자들의 안식처’가 있다는 코타키나발루의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힐링을 즐긴 4일간의 달콤한 휴식이 금세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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