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6. 1.
동말레이시아가 있는 보르네오섬의 최대 도시인 코타키나발루. 말레이시아 13개 주 가운데 하나인 사바(Sabah)주의 주도(主都)다. 사바주는 30여 인종, 350만 인구로 이뤄진 말레이시아의 대표 주다. ‘사바(Sabah)’는 아랍어로, ‘바람 아래 의
땅’이란 뜻이다. 영국령 북보르네오였으나, 1963년 이후 말레이시아 연방정부에 합류하면서 정식으로 사바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한다.
코타키나발루의 ‘코타(Kota)’는 말레이어로 도시를 뜻하고 ‘키나발루(Kinabalu)’는 해발 4천95m로, 동남아시아의 최고봉인 키나발루산을 가리킨다. 코타키나발루는 ‘키나발루산의 도시’라는 뜻이다. 키나발루산에는 무화과나무, 산철쭉 등 다양한 식물들로 울창하다. 산 중턱에선 원주민인 ‘카얀족’, ‘크냐족’, ‘클라빗족’, ‘품바왕족’, ‘페난족’ 등을 통칭하는 ‘오랑울루족’이 산비탈을 경작하며 살아간다. ‘오랑’은 ‘사람’, 울루’는 ‘윗강’을 뜻해 ‘오랑울루’는 ‘윗강에 사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이들은 보통 한 곳에서 공동생활을 하며 15~20년을 경작한 뒤 다른 곳으로 이주한다. ‘키나발루’는 오랑울루족 언어로, ‘죽은자들의 안식처’를 뜻한다. 키나발루산은 이처럼 죽은 사람이 가는 곳이라고 여겨 신성시하고 있다. 산봉우리는 반경 70여 킬로미터에 달하는 광대한 암벽으로 이뤄졌다. 악마를 닮았다고 해 ‘악마의 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산을 중심으로 지정된 키나발루국립공원은 세계에서 가장 큰 꽃인 ‘라플레시아’를 비롯한 1천여 종의 식물이 자생하는 생태 천국이다. 이 때문에 2000년 말레이시아에선 처음으로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다. 사바주 중앙에 자리하고 있다. 산허리가 늘상 구름에 가려 있다. 등산객은 운해를 뚫고 산에 오르는 멋진 추억을 만들 수 있다. 비가 온 후에는 멋진 무지개도 떠오른다.
코타키나발루는 그리스 산토리나섬, 남태평양 피지섬과 함께 세계 3대 석양지로 꼽힌다. 가없는 태평양 적도의 뜨거운 한낮을 넘기면 환상적인 노을을 볼 수 있다. 적도선상의 남중국해 수평선을 뉘엿뉘엿 넘어가는 태양과 하늘과 구름과 바다를 붉게 물들이며 황금빛 자태를 뽐낸다. 구름이 많으면 많은 대로, 맑으면 맑은 대로 날씨에 따라 색깔과 모양이 매일 매일 바뀌기 때문에 늘상 새로운 아름다움을 만나볼 수 있다.
숙소인 넥서스 리조트에서도 석양을 즐길 수 있다. 첫 날은 밤에 도착해 지친 몸을 침대에 파묻기 바빴다. 이튿날은 비가 한 번 내리더니 구름이 너무 짙게 깔린다. 리조트 수영장에서 아이들과 물놀이를 하며 해가 지기를 기다렸건만 그 아름다움을
쉽게 보여주진 않아 얄밉다. 별 기대도 없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서툰 영어로 수영장 안전요원에게 물어봤더니 볼 수 있을 것이라 했건만...
사흘째 되는 날 드디어 설핏한 하늘 저편에서 엷은 구름과 함께 수평선을 넘어가는 태양이 황홀한 노을을 만들어준다. 참 아름다움이 가없다. 어디서 몰려왔는지 석양을 보려고 한국인과 중국인 관광객이 해변에 가득하다. 붉은 노을을 배경으로 온갖 포즈를 취해가며 사진을 찍으려는 이들은 내 작품활동(?)에 훼방을 놓는다. 녹록치 않은 상황이지만 이들을 피해 예술가인양 각도를 잡아가며 사진에 담아본다. 역시 눈으로 보는 것보다 사진 속 노을이 훨씬 그럴싸해 보인다. 바삐 찍고 난 후 스마트폰 갤러리에 모인 신비로운 사진을 한장 한장 옆으로 밀면서 좋은 사진을 고르는 재미가 쏠쏠하다. 흐뭇한 마음에 마치 영화배우를 숭내내 듯 “너는 거기 있고, 나는 여기 있다”며 영화 ‘왕의 남자'의 명대사를 곱씹어본다.
자연과 문명이 공존하는 이곳 넥서스리조트에선 일몰만 즐길 수 있는 게 아니다. 온갖 새들이 아름답게 지저귀는 소리에 아
침 일찌거니 눈을 비빈다. 해 뜨는 시각에 맞춰 홀로 나와 전날 노을이 졌던 반대쪽 하늘을 바라본다. 바닷가는 아니지만, 괴괴한 저 멀리 숲 쪽에서 붉은 기운이 느껴진다. 사진 찍기 좋은 곳이 어디일까? 퍼뜩 떠오르지 않는다. 당연하지, 먼 이국땅인 예서 일출을 본 적이 없으니. 명당자리를 고르기 위해 여기저기 종종걸음을 쳐본다. 용케도 주변에 나무가 우거진 연못을 발견한다. 자리를 참 잘 잡았지 싶다. 나무숲 사이로 붉게 떠오르는 해와, 연못에 비친 해, 한꺼번에 두 개의 해를 낚았다. 스마트폰 카메라 성능이 좀 더 좋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뒤따르긴 했지만, 나름 운치있게 잘 나왔다.
사흘간 묵은 ‘넥서스리조트'는 코타키나발루 외곽에 둥지를 튼 숲 속의 리조트다. 로비 건물 양 옆 숲 사이로 10여 동의 닮
은꼴 숙박시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맨 안쪽에는 큼직한 VIP동이 들어서 있어 시새움을 느끼게 한다. 리조트 뒤쪽으로는 푸르스름한 잔디를 자랑하는 ‘카람부나이 골프장’이 있다. 한가롭게 골프를 즐기는 사람이 간간이 눈에 띈다. 앞 팀이 빠져나갈 때
까지 기다려야 하는 우리네 풍경과 사뭇 다르다. 앞쪽에는 수평선이 보이는 남태평양이 쏴아아~ 쏴아아~ 은빛 모래사장을 적신다. 리조트 주변 숲에서는 야자수를 비롯한 각양각색의 꽃이 아름답게 피어있다. 원숭이와 청설모, 이름을 알지 못하는 야생조류가 많기도 하다.
가장 호기심을 자극하는 동물은 단연 물왕도마뱀. 아기 악어처럼 생긴 것이 한 자 정도는 돼 보이는 기다란 혀를 날름거리며 연못 주변에 죽치고 있다. 걸음걸이는 느릿느릿하다. 자연 훼손을 최소화하고, 공존을 선택한 말레이인들의 개발 방식이 낳은 조화다. 개발 하면 무작정 몽땅 갈아엎는 우리 방식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이를 두고, 우리나라는 건축직보다는 토목직이 득세하기 때문이라는 누군가의 말이 떠오른다. 토목직보다는 건축직의 말에, 특히 친환경론자들의 말에 더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아무튼 잘 보존된 자연 때문에 산책하기에 딱 좋은 풍경이다. 매일 아침이면 각양각색의 이름 모를 새 지저귀는 소리에 눈을 뜨게 되는 멋진 리조트다. 세면대와 욕실 물이 잘 빠지지 않아 좀 불편하긴 하지만, 널찍하고 쾌적해 휴식을 즐기기에 더할나위 없이 좋다. 가구가 세월의 흔적을 느낄 만큼 예스럽지만 나름 운치가 있다. TV에 우리나라 방송 채널도 하나 잡힌다. 방마다 금고가 있어, 여권이나 화폐 등 귀중품을 보관할 수 있어 안심하고 돌아다닐 수 있다. 다만 몇 걸음만 옮겨도 땀이 날 정도로 무더운 날씨가 마뜩잖을 뿐이다.
리조트의 수영장은 그리 크진 않지만, 북적이지도 않아 온종일 아이들과 물놀이를 즐기기에 제격이다. 바로 1분 거리에 수평선이 보이는 확 트인 바다가 있어 바다와 수영장을 오가는 재미도 쏠쏠하다. 바다의 모래사장은 부드럽지만, 너무 뜨거워 맨 발로는 못다닐 정도다. 수영장과 해수욕장이 함께 있는 이곳에서 여행 둘째 날 해름참부터 물놀이를 시작한다. 셋째 날 종일 놀더니 물리지도 않은 지, 마지막 날 아침 식사를 마치고, 리조트를 나서기 전까지도 촌음을 아껴가며 물놀이로 신나게 시간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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