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3. 18.
결혼11주년 기념 일본 가족여행3
오이타 여행 세 번째 날.
아침을 숙소에서 해결하고 나가려는데 한 가족이 차 키를 찾느라 분주하다. 편의점 등 어젯밤 흔적을 털어봤지만, 허사다. 결국 렌터카 회사에 잃어버렸다고 신고한 후 예비키를 해름참에 받기로 한다. 세 가족이 두 차에 나눠 타고 하루 일정을 보내기로 한다.
벳푸 숙소에서 30여분 동안 산을 하나 넘어 우사시로 향한다. 규슈자연동물공원인 ‘아프리칸 사파리’. 일본에서 가장 큰 규모다.
‘정글버스’ 예약 시간이 1시간여 남아있어 만남광장으로 먼저 간다. 조그마한 다람쥐원숭이 먹이 주기 체험이 아이들에겐 가장 인기다. 옛 필름카메라의 필름통만 한 플라스틱 통에 받은 호박씨를 그대로 내밀면, 순한 녀석은 손을 집어넣어 호박씨만 빼먹는다. 사나운 녀석은 통째로 가져가려 한다. 서로 받아먹겠다고 싸우는 녀석들도 있다. 손바닥에 호박씨 하나 올려놓으면, 손으로 집어간다. 귀여운 기니피그의 부드러운 털을 만지는 체험도 아이들에겐 즐겁다. 캥거루 만남의 숲에선 캥거루에게 먹이를 주는 것에 넋을 잃고 있다가 그만 똥을 밟고 마는 한결이. 그것도 어제 득템한 아식스 새 신발로. ㅋㅋ
이제 정글버스를 탈 시간이다. 두 사람 앞에 하나꼴로 먹이 쟁반을 받아들고 27개 좌석의 버스에 올라탄다. 한국어 가이드와 함께. 마치 아프리카 세렝게티 국립공원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일본 최장의 사파리 체험이다. 구역별로 통문으로 구분된 벌판에서 감사나운 사자 갈기와 거구의 코끼리 속눈썹, 키다리 기린의 혀, 쌍봉낙타의 냄새나는 침을 아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보는 것보다 즐거운 것은 먹이 주기 체험. 창을 열고 철창 사이로 꼬챙이 가위를 이용해 준다. 초식동물에겐 사료를, 육식동물에겐 고깃덩어리를.
첫 구역은 산악동물 곰 구역, 곰이 먹이를 받아먹기 위해 차량 앞에 다소곳이 있다. 곰이 바로 코 앞에 있고 철조망 등 별도의 보호장비가 없다. 오히려 우리가 버스 철조망에 갇힌 느낌이다. 우리가 먹이를 주니, 분명 곰이 갇힌 건데. 어쨌든 여느 동물원에 갇혀있는 동물보다는 자유로운 느낌이다. 다음은 섬뜩한 사자 구역.
나무 그늘 아래 축 늘어져 있다가 으르렁대며 버스 앞으로 몰려든다. 하늘에서는 독수리들이 고깃덩어리를 채가기 위해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마치 끝없는 생존경쟁을 펼치는 아프리카 초원에 온 듯한 느낌이다. 가이드도 독수리를 조심하라고 일러준다. 이제 초식동물 구역. 물소가 노닐고, 거대한 코뿔소와 무게 5톤이 넘는 코끼리, 뿔이 5~6개나
된다는 기린을 볼 수 있다. 또다시 사나운 호랑이 구역이다. 백호가 얌전히 앉아 있는데 그 주위를 두 마리의 호랑이가 으르렁대며 마치 싸우듯 엇갈려 지나치기를 반복한다. 동물의 썩은 고기를 먹는다는 하이에나 구역과, 체지방률 5%로 날렵해 동물 중에서 가장 빠르다는 치타 구역, 초식동물인 영양구역을 지나 사파리 여행을 마무리한다. 50여 분이 순식간에 지나간다.
아이들이 아쉬운 듯 원숭이 먹이 주기 체험 한 번 더 하잔다. 다시 가서 보니 먹이가 벌
레로 바뀌어 있다. 여섯 명의 아이 가운데 한결이와 그 친구, 꼬맹이 두 녀석은 손으로 집어 직접 원숭이한테 준다. 애들보다 큰 나머지 네 녀석은 징그럽고 무섭다며, 통째로 준다. 기니피그 쓰다듬는 체험도 한 번 더.
벳푸로 돌아와 ‘가마도 지고쿠’로 향한다.
벳푸에는 7가지 색깔의 지옥온천이 있다. 이 가운데 4개는 국가지정명승이다. 7군데를 다 체험하기엔 시간이 없어서 가마도 지고쿠만 가본다. ‘가마도’는 우리말로 가마솥, ‘지고쿠’는 지옥이다. 가마솥 지옥온천을 뜻한다. 벳푸의 7개 지옥온천 가운데 ‘우미 지고쿠’와 함께 가장 유명하다. 국가지정명승은 아니지만 시설이 전반적으로 깔끔하고 연못과 온실, 족욕탕, 온천수 마시기, 수증기 마사지 등 나름의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많다. 옥빛지옥, 붉은지옥, 회색빛지옥도 한꺼번에 볼 수 있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서자마자 하얀 수증기가 피어오르는 진흙구덩이가 온천임을 알려준다. 좀 더 안으로 들어가면 저 높은 곳에 가시 박힌 쇠몽둥이와 술병을 들고 무서운 송곳니를 드러낸 ‘오니(鬼;おに)’가 떡 버티고 앉아있다. 뿔도 두 개나 달려 있다. 그 아래 움푹 파인 구멍에선 모락모락 증기가 끝없이 피어난다. 그 앞을 아기 오니들이 얌전히 서서 방문객을 반긴다. 위에 있는 무서운 오니와는 사뭇 다르다.
오니는 우리나라 전래 ‘도깨비’와 비슷하지만 분명 다른 모양이다. 도깨비는 사람의 형상이고 뿔이 없는 것이 보통이다. 있더라도 하나다. 방망이에도 가시가 없다. 물론 무서운 송곳니도 없다. 오니와 도깨비의 가장 큰 차이는 사람을 해치느냐, 아니냐다. 오니는 일본의 동화, 민간설화에서 마치 도적처럼 무기를 사용해 인간을 해치는 요물이다. 도깨비는 사람의 형상을 하고, 사람에게 장난을 치거나, 오히려 속임에 넘어가기도 하는 등 익살스러운 면을 보여준다. 귀신이지만 오히려 요정에 가깝다. 도깨비 방망이도 오니의 가시 돋친 쇠몽둥이가 아니라 나무망치나 떡메, 도리깨, 홍두깨 같은 나무로 만든 일상적 도구일 뿐이다. 도깨비는 씨름도 좋아한다고 전해진다. 다리가 하나이기 때문에 왼발을 걸면 쉽게 이길 수 있다. 도깨비는 여러 가지 초능력이 있고, 힘으로 사람을 놀리기를 즐긴다. 악한 사람에게는 악운과 심판을 내리고, 정직하고 착한 사람에게는 행운과 재물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전래동화 ‘혹부리영감’에서처럼.
오니를 지나면 80도의 온천수를 마실 수 있는 음수대가 있다. 이 물을 마시면 10년이 젊어진다니, 너도 나도 식혀 먹느라 정신없다. 물은 그리 안 뜨거운데 정작 떠먹는 양은 그릇이 뜨거워 입을 쉽게 대지 못해 많이 마시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우리 한결이가 한 모금 들이키더니 "10년이 젊어졌으니, 나이가 마이너스가 됐다"고 우스갯소리를 해 모두들 한바탕 웃음꽃을 피운다. 수증기 마사지를 하는 곳도 있다. 코로 천천히 수증기를 빨아들이면 인플루엔자 예방에 좋단다. 너무 가까이 대면 숨쉬기가 힘들 정도로 많은 증기를 내뿜는다.
보글보글 끓으며 김이 모락모락 나는 황토땅도 볼 수 있다. 이 황토에 담배 연기를 불어대면 하얀 김이 더욱 많이 피어오른다. 신기하네~~~.
그 옆에서 아이들과 함께 옹기종기 모여 뜨끈한 온천물에 족욕을 즐긴다. 큰 애들은 금세 적응하고 좋다지만, 아직 아홉 살인 한결이와 그 친구녀석은 발을 넣었다 뺐다를 반복하기만 한다. 10여 분 쯤 발을 담근 후 ‘온센타마고’라는 온천 계란과 ‘라무네’라는 구슬사이다를 맛
본다. 라무네 뚜껑 따기도 재미지다. 뚜껑의 구슬을 1~2초 동안 누르면 또르르 소리와 함께 톡 쏘면서 구슬이 아래로 내려간다. 마실 때는 조금씩 조심히 마시라고, 구슬이 살며시 입구를 막아주는 센스가 있는 사이다다.
온천 연못은 예쁜 옥빛(코발트색)을 자랑한다. 이곳 역시 담배 연기를 내뿜으면, 새하얀 김이 솟아오른다. 신기하네~~~. 한국인 단체관광객을 데리고 온 가이드가 담배 연기를 세차게 내뿜은 후 하얀 김이 피어나는 것을 보여주며 “신기하네~~~”를 연발한다. “신기하네~~~”가 어느덧 이곳 온천의 유행어가 돼버린다.
가마도 지고쿠를 나가는 길목에 아직 쌀쌀한 날씨 속에 연분홍 사쿠라꽃이 예쁘게 피어 있다. 규슈가 가장 남쪽이어서 일본에서 가장 먼저 봄꽃이 핀다. 한반도의 전남처럼.
벳푸에는 1천200년 전 화산 폭발로 만들어져 평균 온도 98도를 유지하고 있는 ‘우미 지고쿠’, 청백색의 물을 자랑하는 ‘시라이케 지고쿠’, 붉은 물색으로 유명한 ‘지노이케 지고쿠’, 온천수가 뿜어져나오는 간헐천이 매력적인 ‘다쓰마키 지고쿠’ 등 4개의 국가지정명승 지옥온천이 있다. 이밖에도 회색빛 진흙이 끓어오르는 ‘오네이시보즈 지고쿠’, 온천열을 이용해 악어를 사육하는 ‘오니야마 지고쿠’ 등이 있다.
지옥온천을 즐기고 이제 마지막으로 쇼핑을 위해 드럭스토어로 향한다. 좁은 골목길 교차로에서 우회전을 하는데 정면에 있던 경찰차에서 무슨 소리가 들린다.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으니, ‘설마 나에게 뭣이라 한 거겠어?’라는 생각에 무심코 지나친다. 2~3분을 더 운전해 드럭스토어 주차장에 주차를 한다. 경찰이 떡 버티고 서 있다. 천천히 되새김질을 해보니 딱히 잘못한 건 없는 것 같은데. 일단 내려서 핸드폰 번역기를 활용해 신호 위반이냐고 묻는다. 경찰은 고개를 흔들더니 “스탑, (고개 좌우로 흔들고), 스타트”라고 한다. 아하, 골목길 교차로에서 일단 멈췄다 출발해야 하는데. 일본인들은 안전의식이 철저하다. 철길 앞에서 건널목이 내려오지도 않았는데 일단 멈췄다가 출발한다. 우리가 배울 만하다. 아뿔싸,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면허증을 숙소에 두고 왔다. 결국 한국어를 할 줄 아는 경찰이 와 숙소까지 경찰차를 타고 함께 가서 국제면허증을 보여주고, 다시 드럭스토어로 돌아온다. 경찰차를 타면 주눅들만도 한데 이 친구들 참 친절하다. 한국어를 할 줄 아는 경찰은 2000년 드라마 ‘가을동화’가 인기 있을 무렵 서울에 교환학생으로 들어와 한국학 공부를 했단다. 20여 분 숙소와 드럭스토어를 왕복하는 동안 차 안에서 이상의 ‘오감도’ 등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눈다. 차에서 내리기 전 과태료가 있냐니까, 원래 있는데 이번엔 그냥 교육만 한단다. 얼마 전 한국인 관광객이 남자인지 여자인지조차 구분이 안 될 정도로 큰 교통사고를 당해 오이타에서 화제가 됐던 것을 알려주며 조심할 것을 재차 강조해준다. 우리나라에서도 경찰차를 타 본 경험이 없는데, ㅠㅠ 나름 추억거리가 될 법도 하다. 올해 아홉수여서 '조심 또 조심해야겠다' 생각했는데, 이걸로 액땜 했으니 이제 좋은 일만 생기려나?
아침 댓바람부터 한 가족은 차 키를 잃어 헤매더니, 또 한 가족은 우리나라에서도 안 타본 경찰차를 타고, 오늘 따라 우울한 분위기?다. 사고 난 것보다 낫다는데 위안을 삼는다. 렌터카 업체에서 차 키 복사하는데 2만 6천 앤이나 한다는 소식에 모두들 입만 떡 벌린 채 조용한 적막감이 흐른다. 마음이 심란해서인지, 다들 피곤하다며 숙소에서 저녁 간단히 해결하고 쉬잔다. 마지막 밤인데 아쉬운 선택이다. 그 결정이 옳았을까? 생각지 못한 기적같은 일이 생긴다. 아침에 그렇게 찾아도 보이지 않던 차 키가 숙소 창틀에서 발견된다. 자그마치 26만 원을 벌었으니, 축하파티를 해야지. 더군다나 일본여행 마지막 밤이 아닌가. 일찌감치 남자 셋, 여자 셋, 아이들 저녁을 챙겨 먹인다. 세 가시버시끼리 오이타의 밤거리에서 방황한다. 우리나라처럼 늦게까지 문을 여는 가게가 별로 없다. 비가 예보됐다더니, 가루비가 내린다. ‘이러다 비만 맞고 들어가는 것 아닌가’ 하면서도 괴괴한 오이타의 밤거리를 둘레둘레 찾아보다 발길이 멈춘 곳은 초밥 전문점. 밖에서 얼핏 보니 음식점 가운데 주방장 네명이 열심히 회전초밥을 만들고 있다. 고급 음식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3일 동안 가볍게 끼니를 때우는 정도로 식사를 한데다, 차 키를 찾아 26만 원을 벌었으니, 맞갖은 ‘황제식사’를 맛보기로 하고 들어간다. 메뉴를 살펴보니, 그리 비싸지도 않다. 회를 먹고 싶었건만, 들마에 들어간 탓인지 적은 것 하나만 남았단다. 아쉬운 대로 회 하나에 초밥을 몽땅 시켜 사케 안주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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